식물인간 여성 안락사 논란… 이탈리아 혼란

식물인간 여성 안락사 논란… 이탈리아 혼란

기사승인 2009-02-08 17:11:02

[쿠키 지구촌] 17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한 여성의 운명을 놓고 이탈리아가 큰 혼란에 휩싸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8일 보도했다.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은 1992년 당시 21세의 나이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엘루아나 엔글라로(38·사진). 그녀는 최근까지 밀라노 근교의 한 병원에서 인공튜브에 의존해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으며 생명을 힘겹게 연장해왔다. 의학적으로 의식을 되찾을 가망은 없었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내세운 가톨릭 교계의 반대로 튜브를 뗄 수 없었고 가족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간호를 계속해야 했다.

길고도 무의미해 보이는 간병에 지친 엔글라로의 부모는 밀라노 법원의 판단을 구했고, 법원은 지난해 가톨릭 교계 등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따라 금명간 북부 우디네의 한 요양소에서 그녀의 인공튜브가 제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반전이 생겼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6일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게 영양공급 튜브를 제거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긴급 총리령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것으로 논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것은 살인이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죠르주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사전에 이 서명을 거부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총리는 긴급 총리령 발표를 강행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더라도 동일한 내용의 동의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며 2∼3일이면 통과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황청 역시 “모든 인간은 생명에 대한 고귀한 존엄성이 있다”며 긴급 총리령을 지지했다.

반면 야당 지도자인 월터 벨트로니는 “엘루아나의 가족에게 평화를 주어야 한다”며 “총리의 개입은 매우 위험한 헌정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엘루아나의 아버지 베피노(67)는 “아내는 오랜 간병과 고된 법정 다툼에 지쳐 암에 걸렸다”며 “총리의 이번 결정은 우리 가족에게 무시무시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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