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이석기 사제폭탄? 김정은 총공격명령?…국정원만 웃었습니다

[친절한 쿡기자] 이석기 사제폭탄? 김정은 총공격명령?…국정원만 웃었습니다

기사승인 2013-10-09 13:50:01


<애초에 잉태된 ‘오발탄’ 보도 참사…국정원은 뒷짐, 여야간사와 언론만 혼쭐>

[친절한 쿡기자] 남재준 국정원장이 8일 오후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 내부 동향,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수사 등 현안에 대해 비공개로 보고했습니다.

남 원장의 보고가 끝난 뒤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과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오후 5시50분쯤부터 오후6시25분쯤까지 정보위원장실에서 공동브리핑을 진행했습니다.

정 의원은 이 의원 수사에 대해 보고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가운데 “대체적으로 언론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했다고 보면 된다”면서 국정원이 보고한 ‘특이사항’을 소개했습니다. 이 의원에게는 30명으로 구성된 경호팀이 있었고 이들이 주 3일 체력단련, 월 1회의 산악훈련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의원은 사제폭탄을 실험하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화약약품으로 폭파 실험한 동영상을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이 폭탄은 니트로글리세린 110ℓ로 만들었고 살상반경이 30m 이른다고 전했습니다. 또 하나 합정동 회합 녹음파일을 잠깐 공개했는데 이석기 의원의 음성이 맞았다고 했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이 회사에 보고한 이 같은 취지의 브리핑 내용을 토대로 야근 기자는 <[긴급]“이석기, 사제폭탄 만들어 실험했다” 30명 경호팀이 주3일 체력단련·월1회 산악훈련도>란 제목의 기사를 작성해 긴급 기사로 내보냈습니다. 오후 7시15분쯤이었습니다.

연합뉴스도 오후 7시16분 <국정원, 국회 정보위 현안보고 요지>란 제목 아래 <◇이석기 수사>에서 “이석기 경호팀 30명이 있었다. 주 3회 체력단련하고 월 1회 산악 훈련을 했다는 보고가 있다. 합정동 모임의 녹음내용은 이렇다. "그야말로 총공격 명령 떨어지면 속도전으로 일체가 돼 강력한 집단적 힘을 활용해 자기 초소에 놓인 무궁무진한 창조적 발상으로 한순간에, 우리 그 서로를 위해…" 나이트로글리세린이라는 화약약품 110mℓ를 사용, 살상 반경 30m 정도인 사제폭탄 실험도 있다. (관련 동영상 공개)”라고 1보를 내보냈습니다.

<정청래 의원 ‘추가사항’ 문자에 아뿔싸!…김재연 의원, ‘왜곡보도’ 항의>

아뿔싸! 정 의원의 브리핑 내용이 충격적이라고 판단한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고 이석기 의원이 사제폭탄을 실험한 것처럼 보도되자 정 의원은 설명이 부족했다고 보고 곧바로 측근들에게 추가사항 문자를 보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 의원실이 오후7시46분쯤 정치부 기자들에게 [정보위 브리핑 관련 추가사항]이란 제목을 달고 3가지에 대해 바로잡는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정원이 말한 폭탄시험은 통진당에서 한 것이 아니라 통진당이 하려고 했던 것을 국정원에서 모의실험한 것을 발표한 것이며 군부대에서 실험한 것임. -폭발물의 살상범위가 30m라고 밝혔으나 김민기 의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됨. -“김정은 총공격 명령지시” 발언은 이석기 의원의 합정동 모임에서 나온 발언이었으나 이를 새누리당 조원진 간사가 김정은 발언처럼 잘못 브리핑해서 전달된 것임.

이를 전해들은 야근기자가 급히 기사를 수정하고 있던 중 통진당 김재연 대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 대변인은 "국정원이 폭탄 제조를 모의 실험한 동영상을 공개한 것을 가지고 마치 이석기 의원이 실험한 영상을 확보한 식으로 보도하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김 대변인은 조금 앞선 8시쯤에는 국회정론관에서 가진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남 원장이 출석해 했다는 발언들이 언론을 통해 왜곡보도 되어지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며 서울신문과 국민일보의 기사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확인 결과, 국정원이 보여주었다는 동영상은 국정원이 군부대에 의뢰해서 가상실험을 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두 언론사 모두 ‘이들이’라는 단어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당원들을 지칭하는 것처럼 사용해 기사를 작성하였으나,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악의적인 오보를 내보낸 언론사와 이를 무책임하게 받아쓰는 언론사 모두에 대해 강력하게 법적 대응하겠다”고 김 대변인은 발표했습니다.

김 의원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야근기자는 수정 중이었던 기사를 마무리해 오후 8시25분쯤 재전송했습니다. 연합뉴스도 오후 8시42분 <국정원, 국회정보위 현안보고 요지>(종합)에서 사제폭탄 관련 부분에 대해 “※사제폭탄 제조와 관련, 국정원이 실험한 동영상도 공개”라고 수정했습니다.

‘사제폭탄’ 실험 이외에도 인터넷에는 ‘김정은, 총공격 명령’ 기사가 잇따라 속보로 떴습니다. 새누리당 조원진 간사의원이 국정원이 밝힌 최근 북한 동향을 설명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총공격 명령 대기를 지시했다고 한다”고 말한 것을 언론들이 속보로 전했던 것입니다.

연합뉴스의 경우 오후 6시1분에 기사 알맹이는 없이 <"김정은, 총공격 명령 대기 지시"(속보)>란 제목의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보도를 접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북한의 총공격 명령에 대한 확인 질문을 던졌고 남 원장은 “나는 지금 이 자리에 하루종일 앉아 있어서 상황을 잘 모르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뒤늦게 전말을 접한 정청래 야당 간사의원은 “조 의원이 이석기 의원의 발언을 김정은 위원장이 한 것으로 잘못 이야기한 것”이라고 바로잡았습니다. 연합뉴스를 확인한 결과, 한시간쯤 뒤인 오후 7시3분에 <정청래 "김정은, 총공격 명령 대기 지시는 와전"(속보)>란 제목의 정정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국정원 비공개 국회보고 관행 시정할 때…여야 협의 거쳐 직접 발표해야>

국정원이 정보위에서 비공개 보고한 내용을 여야의 간사의원들이 기자들에게 전하고 기자들이 속보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발탄’ 사고였습니다. 브리핑에서 보도와 해명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언론이 통진당에 대해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왜곡보도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남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비공개로 보고한 내용을 여야 간사 의원들이 수많은 기자들에게 브리핑한 것이란 점과 그 내용이 다소 충격적인 내용(Breaking News)인 점을 감안할 때 보도의 ‘신속성’이라는 기자들의 생래적 본능이 ‘정확성’ 의무보다 앞질렀던 것 같습니다.

과거부터 정치부를 출입해봤던 기자들은 종종 당했던 바지만 국정원의 비공개 보고와 의원들의 전문(傳聞)으로 인한 기자들의 오발탄 위험은 늘 존재해왔습니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밀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비공개 보고’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의원들의 간접 전달에 따른 부정확한 보도의 피해가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쁜 의미로 해석하면 국정원이 국회란 장막 뒤에 숨어 책임은 피하면서 언론을 통해 여론을 왜곡 내지 호도할 여지도 없지 않습니다. 어차피 의원들을 통해 보도될 내용이라면 국정원이 여야 간사들과 협의를 거쳐 기밀 사항을 빼고 국민들이 알아야할 내용들을 직접 발표하는 것이 이번 오발탄 사건과 같은 실수와 오해를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친절한 쿡기자 역시 국정원의 일방 발표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철저한 확인 보도 태도를 취했어야 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재호 디지털뉴스센터장 j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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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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