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김단비 기자] ‘생명의 꽃’을 피우는 씨앗, 장기기증

[현장에서/김단비 기자] ‘생명의 꽃’을 피우는 씨앗, 장기기증

기사승인 2013-10-15 10:58:00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하지만 한낱 흙이 되기엔 인간의 몸은 너무도 값지다. 장기기증은 다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기적인 동시에 의학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고인이 기증한 간은 계단도 오르지 못하던 간경화 환자를 살릴 것이며 고인의 신장은 고통스럽게 혈액투석을 받아오던 신부전 환자를 살릴 것이다. 살아있어도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없었던 만성 환자에게 고인의 장기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새 생명과도 같다. 특히 피부는 이식만이 절대적 방법인 화상환자의 생명을 살리는데 매우 중요하다.

장기 및 인체기증은 150여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값진 일이지만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장기·인체기증문화에 대한 인식확산속도는 상당히 더딘 편이다. 매장문화가 지배적인 탓에 몸을 내주는 것을 터부시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지난 2011년 피부와 연골, 심장판막 같은 인체조직 이식재의 수입률은 76%에 달했다. 장기를 수입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인체조직은 수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같은 이식재 수입은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지나친 이식재 수입 의존도는 환자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식재 수입업체의 과실이나 지나친 가격경쟁에 따른 품질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동일 인종의 인체조직을 받는 것이 안정성면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국내 기증을 통해 이식받은 것이 좋다.

최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뇌사상태였던 최옥남(48세)씨는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장기 뿐 아니라 인체조직도 기증했다. 평소 장기기증을 하겠노라 공언하던 고인의 뜻을 따른 것이라지만 양막, 인대, 피부 등 모든 것을 내주어야 하는 인체조직까지 기증하기란 가족입장에서 쉽지 않았을 선택이었을 것이다. 고인의 부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기증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힘든 결정 후 마지막으로 본 남편의 모습이 편안해보여 동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도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정작 그 나라 환자들이 그 수술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안규리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우리나라 장기이식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장기 기증자 수가 적어 많은 환자들이 장기기증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는 신장 또는 간을 이식받은 환우들이 직접 내원객들에게 장기기증의 중요성을 알리며 장기기증 참여를 호소했다. 장기기증을 장려하는 의사의 말 한마디보다 환우들의 눈빛과 몸짓이 통했으리라. 이날 행사에는 내원객들로부터 받은 200여장의 장기기증 서약서가 모였다. 장기기증에 서약한 김수환씨는 “삶의 끝자락에서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라며 “죽음을 두려하기보다 생명나눔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며 눈 감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에서 받고 있는 인체조직기증 희망서약은 만 19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법적으로 실제 사망 시 유가족 1명의 기증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희망서약 자체로는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 서약 후에도 언제든지 철회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서약한 사람 가운데 실제로 장기기증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하더라도 지금 하는 이 서약이 언젠가 또 다른 100송이의 생명의 꽃을 피우는 씨앗이 되지는 않을까.

kubee08@kukimedia.co.kr
김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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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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