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곧 K팝의 역사…데뷔 10주년 맞은 동방신기

이들이 곧 K팝의 역사…데뷔 10주년 맞은 동방신기

기사승인 2013-12-29 19:04:00

[쿠키 연예]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어”. 노래 ‘허그(HUG)’의 가사다. 이들은 이 곡을 통해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수많은 10대 팬이 생겨났고 이들의 노래는 각종 차트를 석권했다. 열풍은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 열도까지 뒤덮었다. ‘동방에서 신이 일어난다’는 팀명 뜻대로 아시아의 별이 된 동방신기의 이야기다.

동방신기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킨텍스에서 공연 ‘타임 슬립(Time Slip)’을 열었다. 동방신기와 이들의 팬들이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추억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동방신기 멤버인 유노윤호(본명 정윤호·28)와 최강창민(본명 심창민·25)은 공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데뷔 10주년을 맞은 소감을 밝혔다. 유노윤호는 “10년간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동방신기를 지켜준 건 전 세계의 팬들과 뒤에서 버텨준 스태프”라고 말했다. 최강창민은 “(유노윤호 형에게) 지겹도록 열심히 오래 해먹자고 했다”며 웃었다.

◇동방신기의 10년=동방신기의 10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는 게 가요계 안팎의 평가다. 수많은 그룹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아이돌 시장에서 이들은 지난 10년간 부침 없이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일본 시장에서 동방신기가 거둔 성과는 특별하다. 사실상 K팝 열풍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방신기가 일본시장에 본격 진출한 건 2005년 4월이었다. 당시까지 일본에서 K팝이 차지하는 위상은 초라한 수준이었다. 보아(본명 권보아·27)의 성공 정도가 K팝이 일본에서 거둔 성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동방신기는 ‘신인 가수’ 신분으로 일본 시장에 뛰어들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과들을 하나씩 일궈나갔다. 소녀시대 카라 샤이니 등 현재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그룹들은 동방신기가 닦아놓은 길 덕분에 ‘한류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동방신기가 그간 일본에서 판매한 음반은 787만장이 넘는다. 오리콘 차트에서 1위에 랭크된 곡이
12곡이다. 일본에 진출한 해외 가수 중 단연 최고다. 이러한 성과를 발판 삼아 동방신기는 2009년엔
일본에서 판매된 싱글과 정규 음반, DVD 등을 집계해 발표한 ‘2009년 오리콘 연간랭킹’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에서 명실상부한 톱스타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이들의 일본 내 인기는 여전하다. 올해도 일본 돔 투어를 열어 8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일본에서 신곡을 발표하면 여전히 차트 정상에 오르는 파워를 갖고 있다. 동방신기 멤버 3명(김재중 김준수 박유천)이 2009년 소속사(SM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 분쟁을 겪으며 팀을 탈퇴,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으나 2011년 새 음반 ‘왜’(Keep Your Head Down)를 내놓으며 다시 궤도에 올랐다. 이후 동방신기는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2인조 체제로 활동 중이다.

◇“동방신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전문가들은 동방신기가 거둔 성과가 국내 아이돌 그룹 중 단연 최고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팬클럽 회원 수가 단적인 예다. 2008년까지 동방신기 팬클럽 ‘카시오페아’의 회원 수는 약 80만명에 달한다. 동방신기는 미국의 록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제치고 ‘가장 팬이 많은 가수’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동방신기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일까.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동방신기의 성공비결은 SM엔터테인먼트의 기획력”이라며 “SM은 보아의 일본 진출을 경험 삼아 동방신기에게 일본어나 일본 문화를 숙지시켰고, 이는 동방신기가 자국인 수준으로 일본 시장을 소화해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평했다.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
박지훈 기자
rickonbge@kmib.co.kr
박지훈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