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력’… 박지성의 발자취

‘화려한 경력’… 박지성의 발자취

기사승인 2014-05-14 22:10:01
[쿠키 스포츠] 박지성의 플레이는 화려하지 않지만 경력은 화려함 그 자체다. 2005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한국선수 첫 득점과 한국인 첫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 2007년 아시아 선수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 2008년 아시아 선수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산소탱크’ 박지성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을 이끈 후 유럽으로 진출해 큰 발자취를 남겼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룬 박지성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자랑이었다.

박지성은 명지대 재학 시절이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축구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허정무 감독은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뛰어다니던 박지성을 대표팀에 발탁했다.

박지성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선 ‘강호’ 포르투갈을 탈락시킨 결승골을 터뜨려 전 세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2003년 초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 입단했다. 약 3년간 에인트호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유럽 축구계의 주목을 받은 박지성은 2005년 7월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인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2012년까지 7년간 맨유에서 뛴 박지성은 총 205경기를 뛰면서 27골을 넣었다. 그동안 리그 우승 4번과 챔피언스리그 우승 한 번을 경험했다. 팀 역사상 92번째로 통산 200경기 이상을 출장한 선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는 아시아권 선수로서는 최초의 200경기 이상 출전 기록이기도 하다.

박지성은 2006 독일월드컵에선 강호 프랑스를 상대로 동점골을 뽑는 등 한국 대표팀의 해결사로도 활약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그리스와의 B조 1차전에선 1-0으로 앞서 있던 후반 8분 중원에서 상대의 볼을 가로채 단독 드리블에 이은 쐐기골을 터뜨려 한국의 2대 0 승리를 이끌었다.

박지성은 2012년 잉글랜드 퀸스파크레인저스(QPR)로 이적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QPR의 조직력이 붕괴된 상황에서 팀이 연패를 거듭하자 박지성은 ‘연봉만 많이 받는 선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주전 경쟁에서 밀린 박지성은 지난해 8월 친정팀인 에인트호벤으로 복귀해 좋은 활약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에 33세에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수원=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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