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의 로맨스, 박해일 신민아 주연의 '경주'

낯선 도시에서의 로맨스, 박해일 신민아 주연의 '경주'

기사승인 2014-06-09 21:12:55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주연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6)를 기억하시는지. 낯선 도시에서 만난 두 남녀의 잔잔한 로맨스에 설레었던 관객이라면 이 영화도 좋아할 듯하다.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을 하루 동안 여행하며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한국영화 ‘경주’는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에서 만난 두 남녀가 1박 2일을 같이 하면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담았다.


이 영화를 빛내주는 것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능청스러운 대본이다. 특히 주인공 박해일은 ‘연기인 듯, 연기 같은, 연기 아닌’ 대사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가 맡은 역은 중국 베이징대 정치학 교수 최현. 행동은 어수룩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이다.


친한 형 장례식 참석차 한국에 온 그는
7년 전 기억을 떠올려 무작정 경주의 한 찻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찻집 주인 공윤희(신민아)를 만난다. 윤희의 이름을 듣자마자 “공자의 후손을 여기서 뵙는군요”라고 말하는 캐릭터. 뜬금없는 중국어와 태극권 장면에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극중 ‘경주 여신’으로 불리는 신민아는 우아하면서도 깊어진 연기력을 보인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지인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한 후 밤길을 어슬렁거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특히 한밤중에 고분에 올라 “여기 돗자리 깔고 술 한 잔 더했으면 좋겠다”는 얘기에 “우리 아버지는 그러셨지. 그러다가 돗자리 타고 내려오셨다”는 대사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윤진서 신소율 이외에 ‘베를린’의 감독 류승완이 깜짝 출연한다. 박 교수로 나와 학계의 민얼굴을 보여주는 진상 연기를 펼치는 이는 2인조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경주 그 자체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고분·능은 신비롭고, 보문단지의 숲길과 허름한 뒷골목은 고혹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두 남녀의 로맨스는 죽은 이들의 공간인 고분마저도 로맨틱하게 만든다.


감독은 재중 교포 장률.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장 감독은 그동안 사회 부조리에 내몰린 개인의 힘겨운 삶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왔다. ‘망종’ ‘경계’ ‘두만강’ 등이 대표작이다. 하지만 ‘경주’에서는 사회문제보다는 두 남녀의 수상하면서도 설레는 만남에
초점을 맞췄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분위기는 한결 가볍고, 대중적이다. 12일 개봉. 15세가.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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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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