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전해 들어도 성희롱, 농담시리즈도 성희롱

[친절한 쿡기자] 전해 들어도 성희롱, 농담시리즈도 성희롱

기사승인 2014-09-12 15:53:55

교수가 여학생에게 “여행가자”고 말하거나 사장이 여직원에게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쁘니까 내 비서해라”라고 말하면 성희롱일까요. 둘 다 성희롱입니다.

성희롱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은 항상 생기기 마련입니다. 한순간에 성희롱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이 땅의 사장과 상사들을 위해 고용부가 ‘사업주를 위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가이드북’을 제작해 11일 배포했습니다. 2012년엔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 진정사건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었죠.

‘성희롱이 성립하느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거쳐 법원이 판단합니다. 인권위는 여성부 소속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서 담당하던 성희롱 시정 업무를 이관받아 고용 및 업무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에 관한 조사와 구제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성희롱이란 사업주 또는 상급자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근로자에게 성적 굴욕(모욕)감을 주거나 또는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인권위와 고용부에서 공개한 사례를 통해 성희롱 기준을 따져봤습니다.

가이드북에 등장한 사례로는 ‘안마해 준다며 어깨를 만지는 행위’ ‘여성 직원들 앞에서 바지를 내려 상의를 집어넣는 행위’ ‘성적인 농담시리즈를 메신저로 전송하는 행위’ 등이 있었습니다. 피곤해 보이는 남성 직원에게 “어제 또 야동(음란 동영상) 봤지?”라고 농담을 던져도 성희롱에 해당되는군요. 인권위가 발간한 백서에도 성희롱인지 아닌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례가 있어 소개합니다.

사업주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온천을 같이 가자고 한 후 “호텔을 예약했다”고 했다면 농담이더라도 성희롱입니다. 밤늦게 전화해 “보고 싶다”고 말해도 성희롱입니다. 인권위는 권력관계가 있을 때 이 같은 발언들은 ‘남녀 사이의 단순한 제안이나 농담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회식자리에서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백서에 나온 실제 사건 사례를 보면 부서 상급자가 회식을 명분으로 스트립쇼를 하는 술집에 여직원을 동석시킨 후 소감을 물었다가 벌금 200만원을 물었습니다. 또 상급자가 식당에서 앞치마를 달라고 하는 여직원에게 “너는 가슴이 작아서 음식물이 묻지도 않을 텐데”라고 말했다가 특별인권교육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밖에 “성관계 경험이 있느냐” “모텔에 가봤느냐”라는 질문으로 여성 직원들에게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줬다면 모두 성희롱에 해당됐습니다.


성적 언동을 당사자가 아닌 다른 직장 동료에게 했더라도 성희롱이 될 수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일하던 A씨는 주유소의 선임직원 B씨에게 여직원 C씨를 두고 “콜라에다 약을 타서 어떻게 해보지 왜 그냥 보냈느냐?” 등의 발언을 했다가 벌금을 물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한 성적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됐죠.

인권위는 “직장 동료나 상하 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의 대화는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근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직장 내에서 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성적 언동을 하는 것은 비록 해당 여성이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할지라도 성희롱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음담패설 성희롱도 자주 발생합니다. 초등학교 교장 D씨는 학교 전체 교직원이 워크숍에 가는 버스 안에서 종이에 준비해온 성적농담시리즈(여자와 무의 공통점, 수험생과 신혼부부의 공통점, 책과 여자의 공통점 등)를 낭독했다가 인권위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법과 현실은 다르다는 게 성희롱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알려도 오히려 보복성 징계나 왕따, 괴롭힘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죠. 피해자를 도운 직장 동료까지 징계를 받는 사례도 종종 목격됩니다.

반면 “같을 말을 해도 못 생기면 성희롱, 잘 생기면 그린라이트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내는 남성들도 있습니다. “‘어머, 부장님 헬스장 다니세요? 몸매가 좋아지셨네요’도 성희롱이냐”는 반문도 재미있네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고 말해도 될지 애매할 땐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기자
ideae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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