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사이다’ 사건, 법정드라마 같았던 참여재판…무기징역 내려지기까지

‘농약사이다’ 사건, 법정드라마 같았던 참여재판…무기징역 내려지기까지

기사승인 2015-12-12 18:20:55
YTN 화면 캡처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반박, 재반박, 또 재반박….

상주 ‘농약사이다’ 사건 피고인 박모(82·살인 및 살인미수) 할머니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국민참여재판은 마치 한 편의 법정드라마와도 같았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배심원단 설득을 위해 각자 준비한 치밀한 논리와 증거를 제시했고, 서로의 허점을 파고들며 반박과 재반박을 거듭하는 숨가쁜 장면이 연출됐다.

참여재판이 열린 대구지법 11호 법정의 방청석은 80개. 닷새 간의 재판에서 방청석이 꽉 채워지지 않은 날은 없었다.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의 거리는 약 7m. 이들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도 눈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입모양마저 숨기려는 듯 입을 가리고 귀엣말을 주고 받았다.

수사 관련 서류 뭉치를 7~8개씩 들고 나왔고, 사이다 빈병 등 증거물을 담은 박스 등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앞서 검찰과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자료는 580여 건에 달한다.

재판 첫 날에 녹색 수의를 입은 피고인 박 할머니는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지팡이를 짚고 법정으로 들어서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박 할머니 가족 등은 울음을 터뜨렸다.

변호인석 바로 옆에 앉은 박 할머니는 주소, 나이 등을 묻는 재판부 질문에 작게 대답했다. 이후엔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 가쁜 숨을 내쉬기도 했고 한 손으로 머리를 짚기도 했다.

먼저 검찰이 4000페이지 분량의 수사기록에서 유죄 입증을 확신할만한 사진과 증언 등 핵심 증거를 압축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배심원단에 선보이며 변호인단을 압박했다. 자료 사진에는 농약에 중독된 피해 할머니들이 거품을 내뿜은 상태에서 마을회관 안에 쓰러져 있던 모습과 경찰 압수수색 상황 등이 담겼다.

무선 마이크를 착용한 검사 3명이 차례로 법정 중앙에 나서 배심원단을 향해 박 할머니 범행 동기와 검·경 수사를 통해 밝혀낸 각종 범행 증거 및 사건 당일 행각, 사건 발생 이후 보인 미심쩍은 행동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줄곧 눈을 감고 있던 박 할머니는 변호인단을 통해 무릎이 아프다며 의자보다 법정 바닥에 앉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고 요청하자 재판부는 검찰 측 동의를 얻어 허락했다.

검찰 측 설명이 끝나자 변호인단 역시 무선 마이크를 차고 중앙에 나왔다. 배심원단이 검·경 수사기록 등을 볼 수 있도록 프로젝터 스크린에 올린 뒤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등 검찰이 내놓은 주장들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런 식으로 넷째날까지 치열한 두뇌싸움을 계속했다.

양측은 상대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싶은 내용만 꺼내면 순서가 아님에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실이 아닌 의견을 묻고 있다”, “배심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재판부는 이런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자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재판 기간 검찰과 변호인단은 피해 할머니 2명, 최초 신고자, 수사 경찰관, 행동분석 전문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피고인 가족 등 모두 16명을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특히 이 기간 농약이 든 사이다를 마신 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피해 할머니 2명과 피고인 박 할머니의 법정 만남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직접적인 대면은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 할머니들의 심리상태 등을 고려해 증인석 주변에 가림막을 설치토록 했다. 피고인 박 할머니는 약 7∼8m 떨어진 법정 바닥에 앉아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만 들었다. 자신이 수사 당국에 진술한 것과 상반된 내용의 증언 등이 가림막 너머로 흘러나왔다.

재판부는 “서로 알고 지냈던 피고인과 그 가족 등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증인들이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가림막을 설치토록 했다”고 말했다.

넷째날 오후에는 피고인 박 할머니가 신문을 받기 위해 증인석에 앉았다.

유·무죄 평결을 앞둔 배심원단이 박 할머니 입을 통해 사건 당시 상황을 직접 들은 뒤 지금껏 검찰과 변호인단이 제시한 각종 사건 증거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 할머니의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탓에 검찰과 변호인은 자신들 차례가 되면 증인석에 앉아 있는 박 할머니 왼편에 바짝 다가가 준비한 질문을 이어갔다.

3시간여 동안 이어진 신문에서 박 할머니는 “내가 나이 80이 넘어 왜 친구들을 죽이겠나. 지금 얼마나 억울한지 모른다”, “증인으로 나선 피해할머니 A씨가 거짓말을 했다”며 수차례 무죄를 호소했다.

또 검찰이 박 할머니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증언 내용과 상반되는 증거자료 등을 제시할 때에는 “모른다”, “기억 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박 할머니 가족은 신문 과정 중간 중간 긴 한숨을 내쉬거나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훔쳤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피고인 신문이 모두 끝나자 이날 방청석에서 온종일 재판을 지켜봤던 피해 할머니 자녀 2명이 증인석에 나와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원통하고 안타깝다”며 “진실을 반드시 밝혀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닷새 간의 참여재판 일정이 끝나는 11일 오전. 이날도 어김없이 11호 법정 방청석 안 80개 의자와 좌·우·뒷면 공간은 방청객들로 가득찼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배심원단 앞에서 사건 개요 및 증거 자료 등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유·무죄 입증을 위한 최후 진술을 펼쳤다.

재판부는 다음 순서인 배심원단 평의·평결 절차가 충분한 시간 속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양측에 최후 진술 시간을 각각 3시간씩만 배정했다.

이에 따라 검찰과 변호인단이 번갈아 법정에 나서 의견을 펼칠때 마다 재판부는 스톱워치로 시간을 쟀다.

최후 진술에서 양측은 비록 상반된 증거와 주장 등을 내놨지만 “상식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을 부탁한다”는 요구만은 똑같았다.

이날 검찰은 박 할머니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배심원단 평결 직전 있은 최후 진술에서 “경찰이 눈으로 보지도 않고 날 잡아 넣은 것이 가장 억울하다. 나 때문에 아이들 고생하는 것도 안타깝다”며 “억울해서 살이 벌벌 떨린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며 마지막까지 결백을 호소했다. 방청석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가족들이 고개를 숙여 흐느꼈다.

이날 배심원단은 5시간여에 걸쳐 평의를 했고, 결국 만장일치로 박 할머니의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도 “피고인의 죄가 무겁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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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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