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노끈 풀고 맨발 탈출, 11세 소녀 ‘성탄절의 기적’

스스로 노끈 풀고 맨발 탈출, 11세 소녀 ‘성탄절의 기적’

기사승인 2015-12-24 11:05:55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온라인게임에 중독된 아버지(32)와 동거녀, 동거녀의 친구로부터 2년 간 감금·폭행·굶주림 등의 학대를 당한 11세 A양의 탈출은 ‘성탄절의 기적’이었을까.

A양이 집을 빠져나온 것은 성탄절을 약 2주 앞둔 지난 12일 오전 10시 30분쯤. 아버지 B씨는 세탁실에 갇혀 있던 A양이 며칠 째 물만 먹다가 너무 배가 고파 밖으로 나오자 “왜 허락 없이 나왔느냐”며 빨간색 노끈으로 딸의 손발을 묶어 다시 감금했다.

탈출을 결심한 A양. 다행히 뒤로 묶인 손의 노끈이 풀렸고, A양은 2층 창문을 나와 가스 배관을 타고 밖으로 나왔다.

A양은 지난해에도 탈출을 시도해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나가던 음식배달원이 A양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는 집에 데려다 주는 바람에 다시 지옥같은 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영하권의 추운 날씨 속에 반바지·맨발로 동네를 돌아다니던 A양은 집에서 약 150m 떨어진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A양은 무엇에 홀린 듯 바구니에 과자·사탕 등을 마구 담다가 가게 한편에 주저앉아 과자를 허겁지겁 먹었다.

바구니 채로 슈퍼를 빠져나오려다가 주인에게 들키고 나서도 A양은 손에서 과자를 놓지 않을 정도로 음식에 집착했다. 그만큼 허기에 지쳤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을까.’

지난해의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슈퍼마켓 주인은 아이가 지나치게 야위었고, 추운 겨울에 맨발로 돌아다니는 걸 이상하게 여겨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도착한 경찰은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A양은 고아원에서 나왔다고 둘러댔다. 집으로 또다시 보내질까 무서워서 한 거짓말이었다.

경찰은 A양을 일단 병원으로 옮겼다. 유독 집·가족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하는 경찰은 수상한 느낌을 받았고, “사실대로 말하면 집으로 안 보내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말문을 연 A양. 그리고 A양이 털어놓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A양은 2013년 가을 인천 연수구 빌라로 이사온 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감금된 상태로 2년을 넘게 지냈다.

아버지 B씨는 직업도 없이 온종일 게임에만 몰두하다가 툭하면 손과 발로 A양을 때리고 심지어는 행거 쇠파이프도 휘둘렀다. 때리고 나서는 화장실 또는 세탁실에 가뒀다. 부천에서 2학년 1학기까지만 학교를 다니고는 그 이후로는 학교도 못 다녔다. 일주일 가까이 밥을 주지 않아 굶은 적도 있었다.

A양이 발견된 당시 키는 120cm, 몸무게는 16kg이었다. 11살 아이가 4살 평균 몸무게에 불과할 정도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은 A양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이미 B씨와 동거녀 C씨(35), 함께 살던 친구 D씨(36·여)는 A양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고 달아난 뒤였다. 경찰은 14일 체포영장을 신청해 추적한 끝에 16일 오후 경기도 광명과 인천의 한 모텔에서 B씨 등 3명을 잇따라 체포했다.

경찰은 동거녀 C씨가 경찰서에 와서 “우리 강아지는 잘 있느냐”고 묻자 혀를 내둘렀다.

동네 이웃들은 A양이 그 집에 사는 줄조차 몰랐지만 B씨와 C씨가 외출할 땐 늘 강아지를 아기처럼 가슴에 품고 끔찍이 아꼈다고 말했다.

이들 3명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상습 상해·감금·학대치상과 아동복지법상 교육적 방임 혐의로 18일 구속됐고, 24일 검찰에 송치됐다.

A양은 밝고 말을 잘하며, 자기 의사 표현이 뚜렷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평소 독서를 즐기며 또래와도 어울리려 하는 등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병원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그동안 굶주림에 시달린 탓인지 밥을 허겁지겁 먹는 등 음식에 대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아빠가 처벌을 받기 원하느냐는 물음에 A양은 또렷하게 ‘네’라고 답했다.

한편 A양을 돌보고 있는 인천 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는 각종 선물이 속속 도착하고 후원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2015년은 A양에게 ‘성탄절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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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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