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슬리퍼 신던 라미란, 하이힐에 올라서다

[쿠키인터뷰] 슬리퍼 신던 라미란, 하이힐에 올라서다

기사승인 2016-02-02 06:30:55
라미란

[쿠키뉴스=이혜리 기자] “슬리퍼만 신다가 하이힐을 신으니까 익숙하지 않네요.”

쌍문동 치타여사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대신 배우 라미란이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청순함을 뽐내며 지난달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등장했다. 하이힐을 신은 라미란의 걷는 모습은 영 어색했다. 자신도 쑥쓰러운 듯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얘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며 무대에 올랐다.

라미란은 그동안 작품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조연으로서 존재감을 뽐내며 충무로 대표 ‘신스틸러’로 등극했다.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를 통해 내공을 쌓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충무로에 데뷔, ‘미쓰 홍당무’ ‘댄싱퀸’ ‘스파이’ ‘소원’ ‘국제시장’ 등 영화에서 감초역할을 해왔다. 이후 tvN ‘막돼먹은 영애씨’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등 TV드라마를 통해서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배우로 거듭났다.

라미란은 슬리퍼가 익숙하던 여배우였지만, 이제는 하이힐이 더 어울릴 법한 배우로 성장했다. 톱스타들만 연다는 작품 후 기자간담회까지 열면서 말이다. “지금의 인기가 얼마나 가겠냐”라며 겸손함과 함께 특유의 솔직한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낸 라미란은 이날 ‘응팔’ 출연 이후 바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치타여사’로 올겨울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영 소감은

“처음에 시작할 때는 감독님이 하도 엄살을 피워서 시작하는 배우들도 ‘이번에 잘 되겠나’ 싶은 생각으로 촬영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면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저한테도 이게 인생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는 동안도 즐거웠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한 작품이다.”

촬영하면서 잊지 못한 순간은

“극 중 남편인 성균 씨가 유행어를 많이 하지 않았나. 저희 식구들이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혼자 애쓰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웃음) 받아주고 웃어줘야 하는데, 어느 순간 본인도 즐기더라. 나중에는 진짜 짜증나서 ‘하지마!’라고 소리 질렀다.”



치타여사의 패션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애초에 설정돼 있었다. 항상 ‘치타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는다’라고 대본에 명기가 돼있었다. 애를 먹었던 건 시중에 호피무늬 옷이 잘 없어서, 스타일리스트들이 재래시장을 많이 돌아다녔다.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 겨울이 됐는데 아이스 천으로 된 호피옷을 입고 있었다.”

아줌마 역할만 14번째다. 본인만의 아줌마 연기 철학은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한다. 써주시는 대로 연기하는데 (다른 사람들은)‘응팔’ 할 때 애드리브가 많은 줄 알더라. 성균 씨 때리는 것만 애드리브였다. 모두가 생각하는 아줌마 캐릭터가 수다스럽고 우악스러운 게 대부분이다. 그걸 좀 반대로 하려고 노력한다. 보시는 분들도 지겨우실 것 같아서 약간씩 비껴가게 표현하려고 한다.”

‘응팔’에서 너무 많은 걸 보여줘서 고민은 없었나

“회차를 거듭하면서 하얗게 불태워야했다.(웃음) 그래서 감독님에게 ‘다른데 가서 할 게 없다. 밑천 다 떨어졌다. 어떡하냐’고 말했다. 그러자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알아서 해라’라고 하더라. ‘응팔’은 유독 지문이 가지는 힘이 큰 작품이었다. 재미있는 장면인데 슬프거나, 슬픈 장면인데 웃긴 경우도 있었고. 기존의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할 때 보다 대본이 주는 신선함이 있었다.”

‘응팔’이라는 드라마가 주는 특별함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근래에 보기 드문 드라마였다. 보통의 드라마는 가족이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면에 나와 가족마다의 에피소드가 다뤄졌다. 배우로서도 이런 작품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전원일기’ 같다는 분들도 계시는 데 이젠 그런 드라마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연세 드신 분들도 많이 보시고 좋아하시더라. 저희 엄마 올해 여든이신데 ‘이제 응팔 끝나면 뭘 보고 사나’ 하시더라. ‘응팔’처럼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 필요한 것 같다.”

‘국제시장’으로 천만배우에 등극하고, ‘응팔’로 스타가 됐다.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이렇게 간담회를 하는 것 자체가 떴다고 느껴진다. 언제 제가 기자분들을 모시고 호텔에서 간담회를 하겠나. 절실히 느끼고 있다. 평소엔 화장도 안하고 동네 마트에 잘 돌아다니는데, 예전엔 ‘막돼먹은 영애씨’의 ‘라과장님’이라고 불렸다. 이제는 나이 드신 분들도 ‘정봉이 엄마’ ‘치타 여사’라고 부르며 알아봐 주신다. 많이 알아봐 주시는 것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다.”

다작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정말 행복한거다. 예전엔 계속 쉬면서 다음 작품이 언제 들어갈지 기다렸다. 그랬기에 일을 더 해도 채워지지 않을 정도의 갈증이 있다. 한편으로는 제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보시는 분들이 질려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해야 할 것 같다. 안 하면 배우가 아니지 않나. ‘너무 많이 소진돼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건방진 것 같다.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할 것이다.”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것 같다

“부담이 되더라. 그동안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드렸지 않나. 다음 작품에선 그렇게 재미있거나 눈에 띄는 역할이 아니다. 실망하실 수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완급을 조절한다고 생각하고 계속 할 것이다. 보일 수 있게 노력하는 것 보다는 그 작품에서 필요한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라미란이라는 배우이기보다 그 작품 안의 캐릭터로 보여야하니까.”

본인이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입지는 어느 정도 되나

“제가 ‘이만큼 올라왔구나’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지금의 인기는 반짝 인기라고 생각한다. 제가 주연을 해서 작품을 말아먹더라도 부담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내 작품이고 좋아서 하는 거지만 흥행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작은 역을 해도 뭔가 해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부담을 혼자 느끼고 있다. ‘더 뭘 보여드려야하는데’ ‘도움이 돼야 하는데’ 그런 생각들 때문에 부담이 있는 것이다. 제가 얼마나 대단한 톱스타가 되겠나.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목표다.”

배우로서 힘을 잃지 않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연기는 항상 재미있다. 아줌마 역할을 해도 다 같은 아줌마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것 아닌가.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서 겪어보지 못 한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이것보다 재미있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 사랑해주시면 좋고, 돈도 벌 수 있고. 최고의 직업이지 않을까. 좋게 봐주시는 게 감사하다.”

라미란의 2015년은 어땠고, 2016년은 어떨까

“2015년에 잘 숨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봇물 터지듯 작품들이 잘 됐고, 바쁜 사람이 됐다. 2015년은 숨고르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영화는 미리 찍어놨던 것들이고, 막돼먹은 영애씨와 응팔밖에 안 했다. 되게 많이 한 것 마냥 뻥튀기처럼 불어난 해인 것 같다. 2016년에는 그 뻥튀기를 먹으려고 한다. 너무 다작을 하면 소모되지 않느냐고들 하시는데, 많이 하지 않는 것처럼 안 보이게 숨어서 잘 하겠다.” hye@kmib.co.kr/ 사진=박효상 기자
이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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