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선배 기자가 말했다. 기업들이 국내보다 해외로 나가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 아니겠느냐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동안 만난 기업들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해외는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찾기 위해 나가지만 국내 투자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생산과 연구개발(R&D), 공급망을 위해 국내에서도 새로운 거점이 필요했다.
지역에 이미 뿌리내린 기업들을 만나면 이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전북 익산에 기반을 둔 종합식품기업 하림 관계자와 만났을 때는 대화 곳곳에서 지역에 대한 애정과 투자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익산시 역시 하림과 함께 성장할 방안을 꾸준히 고민해왔다. 기업 이름을 딴 ‘하림로’가 있을 정도다. 또 하이트진로의 강원 홍천공장도 오랫동안 지역 일자리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좋은 기업 하나만으로 사람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직장은 있어도 배우자가 일할 곳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 다른 회사로 옮길 선택지가 적고 교육과 의료, 교통 여건까지 부족하다면 이주는 쉽지 않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일자리 하나가 아니라 일자리의 선택지다. 기업 하나가 만드는 고용과 여러 기업이 모여 만든 산업생태계가 형성하는 노동시장은 다르다.
정부는 다시 국가균형성장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5극3특’을 중심으로 권역별 성장엔진을 만들고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를 지역 산업과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균형발전 정책은 역대 정부에서도 반복됐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특구를 지정했으며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기업 유치와 인재양성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수도권으로 향하는 기업과 사람의 흐름을 돌려놓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는 무엇이 달라야 할까. 지난 17일 열린 ‘2026 쿠키뉴스 산업포럼’에서 정부와 기업, 전문가들이 내놓은 답은 비슷했다. 투자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투자를 지역 산업생태계로 이어가는 실행력이라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2035년까지 새만금에 약 9조원을 투자해 AI 데이터센터와 태양광, 수소, 로봇 등을 하나의 미래산업 생태계로 묶을 계획이다. 투자 결정 이후 새만금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산업용지를 늘리고 기업 지원 예산과 기반시설 투자를 확대하는 등 후속 작업이 이어졌다.
기업의 투자에 정책이 뒤따랐다. 앞으로 필요한 것도 이런 움직임이다. 기업은 정부가 만들어 놓은 계획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력과 용수가 부족하거나 인허가와 규제가 사업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투자는 흔들린다. 공장이 들어선 뒤에는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고 그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까지 필요하다.
그래서 기업이 실제 투자 과정에서 어디가 막히는지 듣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노동자와 지역 주민, 지자체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투자가 현실이 될 수 있는 답을 제때 내놓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지역의 역할도 기업 유치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앵커기업이 지역 기업과 거래하고 대학·연구기관과 기술을 개발하면서 또 다른 기업과 인재를 끌어들여야 한다. 지역에서 만든 제품과 서비스가 더 큰 시장으로 나갈 길도 열려야 한다.
AI 대전환은 이런 변화를 만들어낼 새로운 기회다. 자본과 노동, 기술에 더해 데이터와 에너지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중요해지면서 기업의 입지 조건도 달라지고 있다. 제조 기반과 데이터가 축적된 지역, 충분한 부지와 에너지를 확보한 지역은 이전과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균형발전의 청사진은 이미 여러 번 나왔다. 이번만큼은 선언으로 시작해 선언으로 끝나는 균형발전이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선택과 정부의 실행이 맞물린 지금,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를 걸어본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