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터와 로그라인 정도만 접하고 관람한다면 필히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으리라. 낮은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마저 반전인 영화 ‘디거’다.
‘디거’(감독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는 꼰대 괴짜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이 그린란드 빙하 시추 시설에서 발생시킨 작은 균열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역대급 대재앙으로 번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문구 그대로다. 원유 채굴로 빙하에 금이 가고 쪼개지면서 생겨난 얼음덩어리가 해류를 타고 유럽으로 향한다. 그 결과 쓰나미가 내륙을 덮치고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여기까지가 도입부다.
디거의 대저택 밀실에 모인 정재계 고위 인사들은 기괴하고 우스꽝스럽다. 전 세계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을 논의하면서 저마다 내놓는 방책은 하나같이 단순하거나 과장됐다. 쓰나미를 예측했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도,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다. 의도적으로 사태를 방관하고 이후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주도권을 되찾을 생각뿐이다. 시설 소유주인 디거는 물론, 그를 지원한 컴슨 대통령(존 굿맨)도 그렇다.
환멸 나는 기득권층의 논쟁이 펼쳐지기 전, 영화는 정부가 뒷배인 거대 자본가를 표상하는 디거의 일상을 먼저 보여준다. 이후 숨 가쁘게 펼쳐질 서사의 기반이다.
디거는 시간이 돈인 거부(巨富)답게 온종일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원격으로 자산을 관리하기 바쁘다. 안전환경보안 책임자 가네쉬 박사(리즈 아메드)가 지속적으로 시추 시설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38살 먹은 애완 고양이가 더 중요하다. 애석하게도 고양이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다. 뻣뻣한 털, 야윈 몸, 뒤틀린 눈 한쪽…. 여기에 백혈병까지 앓고 있다. 평생 참치만 먹어 수은 중독도 의심된다. 저택은 비현실적으로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곳곳에 동물 박제와 모피가 즐비하다.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인물의 면모는 압도적인 미술을 입고 극대화된다. 속절없이 이냐리투 감독의 세계관에 빠져든다.


이때 첫 번째 반전은 톰 크루즈다. 40여년 물리적·신체적 한계에 도전해왔으나 캐릭터 측면에서 이처럼 파격적인 변신은 전례 없다. 정수리는 휑하고 살은 늘어졌는데 발화량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액션 스타로서 보여준 역량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가 복잡한 층위의 인물을 능숙하게 표현할 것이라 확신한 이는 몇 되지 않았을 터다. 본인도 두려운 도전이었단다. 그럼에도 그는 불가능해 보였던 미션을 완수했다. 줄곧 이러한 연기를 해왔던 배우마냥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데, 특히 롱테이크로 촬영한 연설 장면은 그의 고난도 액션 못지않게 짜릿하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그의 탁월한 소화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반전은 작품의 구조에 있다. 가장 큰 스포일러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려 한다. 사전 정보에 대한 민감도와는 무관하다. 어떤 쪽이든 모르고 봐야 이 영화가 의도한 재미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더 나아가 메시지를 강화하고 작품의 통렬한 풍자에 방점을 찍는 요소로 기능한다.

인간과 사회의 여러 이면을 전달하는 방식이 유효했는지에 대해서는 평이 갈릴 수 있겠다. 빈틈없이 들어찬 미장센,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인물들의 대화와 독백은 지나치게 뚜렷한 목적을 띠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또 지구에 발붙인 인간 모두가 환경 파괴범이라고 일침하는가 하면, 암묵적인 사회 계급화와 황금만능주의, 이를 무력하게 수용하는 서민의 처지까지 꼬집는다. ‘거대한 헛스윙’, ‘피로감만 남긴다’,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고함을 질러댄다’ 등 혹평이 나오는 까닭이다. 시상식을 노리고 제작한 영화라는 지적도 많다. 2일 오후 6시 기준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54%다.
이 대목에서 극중 한 주요 인물이 떠오른다. 그는 ‘디거’를 비판한 비평가 몇몇처럼 디거의 이야기를 불편하게 여기고 끊임없이 항의한다. 스스로 좀처럼 관련이 없다고 믿는 듯도 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쩐지 로튼토마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영화의 일부 같다는 것이 필자의 감상이다.
지난 1일 13번째 한국을 찾은 톰 크루즈는 ‘디거’가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 초월성은 보편성에서 온다. 따라서 교과서 같은 이야기로 비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10년간 축조한 구조와 세계관, 환상적인 미술 그리고 톰 크루즈를 내건 이냐리투 감독의 정면 승부는 높이 사고 싶다. 이 총력전을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길 권한다.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129분.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