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감옥에서 탈주한 지강헌과 공범들은 서울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인질극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지강헌이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오래도록 회자됐다.
채원영 보해양조 대표의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실제 사표를 제출하지는 않은 상태로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대표는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 선임되며 2015년 11월부터 보해양조 운영을 총괄해온 임지선 대표와 각자대표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올해 9월 임 대표가 국내경영에서 물러나고 해외사업부문으로 넘어가면서 보해양조는 채 대표 단독대표체제로 전환됐다. 당시 보해양조는 실적부진으로 인한 책임인사라는 의혹에 대해 ‘직함은 그대로이며 오히려 해외사업을 함께 담당할 신규 임원까지 선임했다’며 일축했다.
따라서 단독대표체제 두달여만에 채 대표가 사의를 표명한 것은 사실상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독박’ 썼다고 보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취임 이후 신제품 출시와 마케팅 등 사실상 경영 전반을 지휘해온 임 대표를 실적적부진 문제가 불거지자 해외사업부문으로 피신시킨 뒤 채 대표에게 책임을 물은 형태기 때문이다.
보해양조 창업주인 임광행 회장의 손녀인 임 대표는 취임 초기 ‘부라더#소다’를 출시하며 이른바 저도주 열풍을 이끌었다. 당시 2030세대 여성들이 부라더소다의 주 고객층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에서는 ‘여성 대표라서 그런지 여성 대상 마케팅이 확실히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도주 열풍에 힘입어 보해양조는 수도권지역 주류시장을 두드리기도 했다.
부라더소다 성공에 힘입은 임 대표는 콜라칵테일 ‘술탄오브콜라’, 장미향 소주 ‘언니네브루스’, ‘아홉시반’ 등 신제품을 연이어 선보이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감행했으나 반향을 일으키는데는 실패했다.
신제품 실패로 인한 부메랑 효과는 실적에 악영향을 끼쳤다. 제품 포트폴리오가 늘어나면서 임 대표 취임 첫해 판관비는 498억원을 기록하며 17.7%나 늘어났다. 영업활동비와 광고선진비 역시 50% 이상씩 증가했다. 접대비 역시 1억8400만원에서 14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나며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안방’이었던 전라지역에서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선전하면서 2000년대 초 90%를 웃돌았던 전라지역 잎새주 점유율은 60%대로 꺾이는 악재도 이어졌다.
결국 보해양조는 2015년 매출 1220억원, 영업이익 84억2535만원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매출 1149억원, 영업적자 56억6457만원으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전환했다. 올 1분기 117억원의 영업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이는 임·직원들의 10~30% 임금 반납과 지점 통폐합 등 비용줄이기에 집중한 탓으로 실적반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같은 실적악화에서 채 대표의 책임이 전무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졌던 임 대표는 오너가라는 이유로 책임에서 한 걸음 비켜섰다.
같은 대표로 함께 일을 했지만 임원은 사의를 표명해야했고 오너가 3세는 책임을 피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오너무죄 임원유죄.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