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로 만든 물체는 쉽게 깨진다. 하지만 유독 압력에 멀쩡한 유리가 있다. 전 세계 곳곳에 자리한 ‘유리천장(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해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던 순간 전 세계인이 좌절했다. 그들이 입을 모아 힐러리 클린턴의 낙선 이유로 ‘여성성’을 꼽았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이 이러할진대 한국은 두말할 것도 없다. 유교 문화권 속 가부장제를 고수해 온 한국 사회에서 유리천장은 더욱 두터웠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여성의 고용비율 및 관리자 비율 변화 추이’에 따르면 여성고용률은 2006년 32.32%, 2016년 37.9%다.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으로 전체 사업장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한국이 10.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7.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실제로 17일 발표된 한화그룹 임원진 인사 대상자에서 여성은 없었다. 한화생명, 한화케미칼, 한화손해보험, 한화건설, 한화갤러리아, 한화개발 등 상장 계열사를 통틀어 여성 임원은 한 명뿐이다.
그러나 변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16일 삼성전자가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임원진 인사를 단행했다. 외국인과 여성 인력의 임원진 승진도 이뤄졌다. 지난해 2명에 불과했던 여성 인력 승진은 7명으로 늘어났다.
핵심 기술인재 펠로우에 여성이 임명되기도 했다. 장은주 펠로우는 퀀텀닷 한 분야에 10년 이상 몰두, 기초연구부터 상용화까지 이뤄낸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삼성전자 ‘첫 여성 펠로우’라는 영예를 안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 여성 임원 승진자가 증가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치하하고 끝내선 안 된다. 천장에 금이 간 정도에 만족해서는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유리천장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승희 기자 aga445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