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자 전 총장 해임 뒤 “리더십 바로 세우자” 목소리 확산
교수회, 총장 후보추천위 개편 제안… “수용 안되면 보이콧”
학생비대위 “학생 참여권리 인정될 수 있도록 대응운동 계획”
“차기 총장 선출은 최순자 전 총장 선출 등으로 인한 여러 혼란·폐단은 물론 지난 10년간 우리 대학의 불안정한 리더십을 올바로 극복하는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파문’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그룹 산하 정석인하학원이 소유한 인하대에서는 수년간 이어진 그릇된 리더십을 바로 세우기 위한 구성원들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독단적 학사·행정 운영으로 갈등을 야기한 최순자 전 총장 해임에 따라 이뤄지는 새 총장 선출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확보하기 위한 학내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24일 인하대 교수회 등에 따르면, 인하대 재단인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이사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주까지 신임 총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려던 일정을 잠정 중단했다. 기존 추천위 구성이 불공정하다는 교수회의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추천위는 조 이사장이 임명하는 위원장을 비롯한 재단 이사 5명, 교수 4명, 총동창회 대표 1명, 지역 인사 1명으로 채워져 있다. 외견상으론 재단과 학교 구성원이 같은 비율로 보이지만, 지역 인사의 경우 관례상 한진그룹 계열 대한한공의 추천을 받고 있어 사실상 재단이 총장을 임명한다는 비판이 있다.
인하대 교수회는 지난 17일 “추천위 교수 4명을 추천해달라”는 재단 측에 ‘민주적 총장 선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은 지역 인사 1명을 재단 및 교수 추천위원이 공동으로 추천하자는 제안을 담았다. 교수회는 제안이 수용되지 않으면 민주적으로 총장을 선출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추천위에서 빠지겠다는 경고를 전했다. 교수회는 25일 오후 관련 성명 발표를 통해 총장 선출 등에 대한 입장과 향후 계획 등을 재차 밝힐 예정이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총학생회 측도 재단의 입김이 강한 총장 후보추천위에 학생의 목소리를 넣을 수 있도록 개편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최 전 총장 선임 당시에도 선출 구조 및 방식에 문제가 있어 이의를 제기했지만, 실질적으로 관철된 부분이 없었다”며 “재단이나 학교가 학생의 참여 권리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 인식이 크다”고 말했다.
인하대는 지난 1월 개교 이후 처음으로 교육부의 중징계 요구에 따라 현직 총장이 해임되는 사태를 맞았다. 2015년 3월 취임한 최순자 전 총장은 한진해운 부실채권에 대학 기금을 쏟아 부어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사실이 교육부 조사에서 드러났다. 최 전 총장 체제에서 인하대의 적자는 매년 불어났다. 2015학년도 70억원, 2016학년도 90억원, 2017학년도 120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누적됐다. 여기에 부실채권 매입 문제가 불거져 국책 사업비마저 삭감되거나 중단된 상태다.
교수와 학생 등 학내 구성원들은 지난해까지 최 전 총장 퇴진운동을 벌이면서 학내 분규를 겪었다. 재정 손실이 퇴진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하긴 했지만, 기저에는 최 전 총장의 일방적 의사결정 등에 따른 구성원들의 개탄이 깔려있었다. 교수회는 2016년 6월 임시총회를 가진 뒤 불신임에 준하는 강력한 경고를 최 전 총장과 재단에 전달했고, 이듬해 4월 열린 정기총회에서 총장 사퇴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91.7%의 압도적 찬성률을 기록했다. 같은 날 직원노조는 99%의 찬성으로 총장 사퇴를 의결했다.
인하대의 한 교수는 “그간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총장들의 처사가 잇따랐는데, 구성원이 공감하는 선출 과정 및 학사 운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지나 동력을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면서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전례를 답습하게 되면 더 큰 문제와 반발을 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