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사각’ 의료기구 멸균소독 “대책없나”

‘관리사각’ 의료기구 멸균소독 “대책없나”

기사승인 2018-05-14 16:26:27
전문가들은 의료감염 예방의 첫 걸음을 철저한 소독과 멸균이라고 강조한다. 미생물에 오염되기 쉬운 의료기관의 환경은 감염의 온상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러한 의료기구의 재처리 과정을 ‘환자안전’을 위해 필요한 미생물의 불활성화 과정이라 정의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기구 재사용률이 높은 편이나, 재처리 과정에 대한 국가적 관리가 전무한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양심에만 의존하고 있어 환자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허울뿐인 정부의 소독멸균 점검

실제 국가의 허술한 감시체계나 규제, 재정적 지원이 없다시피해 중소기관은 물론, 상급종합병원의 의료기구 소독·멸균도 제대로 시행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2015년 정선영 등이 국내 60개 병원을 대상으로 ‘의료기관 인증제 도입에 따른 감염관리 실태분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8%가 ‘규정에 따라 수술기구의 멸균과 소독을 관리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2014년 국내 의료기관의 소독·멸균 관리 실태조사에서도 전체 병원의 42.7%만이 소독과 멸균에 대한 정기적 모니터링을 실시했고, 300병상 미만 의료기관의 시행률은 고작 25.6%였다.

이러한 문제가 지적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개별 의료기관의 감염 및 소독·멸균 관리에 대한 주기적인 조사와 점검을 약속하고, 연말 의료기관에 대한 대대적 소독·멸균 현황 점검 계획을 밝혔지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연쇄사망사건으로 인해 시행되지 않았다. 문제는 실태조사가 이뤄졌다고 해도 관련 규정의 미비로 관리가 소홀한 의료기관에 대한 합당한 행정처분이 이뤄지기 어렵고, 그 결과 또한 의료소비자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맹점도 안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의료기관에서의 소독과 멸균지침>도 표준절차에 대한 안내일 뿐 의무 시행에 대한 강제성이 없는 상황이다. 4년에 한 번 이뤄지는 의료기관인증평가도 의료기관의 소독멸균 지침의 이행정도를 반영하지만 멸균에 대한 평가 항목이 기초적인 국내지침에 미치지 못해 부실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마저도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하며 ▶멸균기를 정기적으로 관리한다 ▶멸균물품을 관리한다 등 단 2가지 사항만을 조사하는데 그치고 있다. 심지어 의료기관들이 인증평가제 조사기간에만 반짝 준비해 인증을 획득한다는 내부 증언들도 나오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멸균 표준지침 있어도 현실적 운용 어려워

한편, 의료계에서는 지침에 따른 올바른 소독·멸균 수행을 의료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꼽으면서도, 이를 수행할 여건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지침 상 멸균 이후 멸균된 과정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생물학적 지표(인디케이터)를 사용해 검증해야 하고, 인공관절과 같은 임플란트 기구 멸균 시에는 이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인디케이터 사용에 소요되는 비용 등을 의료기관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설명이다.

병원중앙공급간호사회는 “중앙공급실에서 필요한 지침과 표준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독과 멸균 등 의료기구의 재처리과정에 대한 비용 보상체계가 전무해 세척이나 멸균을 철저히 하면 할수록 의료기관의 비용부담이 늘어 표준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의료기구의 미흡한 소독·멸균은 감염관리를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환자의 신체적, 경제적 피해로 이어진다. 환자안전을 위한 의료기구의 재처리 과정이 국내에서도 지침대로 잘 이행되려면 정부의 조사감시를 통해 지침 이행이 잘 된 병원에는 인센티브 등 지원을 해주되,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의료기관에는 합당한 행정처분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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