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연구중심 특수대학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총장 정무영)에서 발생한 제적 유학생의 '비트코인 채굴 사건'이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과 별도로 학내 책임 소재를 놓고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학교에서 제적된 인도네시아 국적 유학생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디자인·인간공학부 이외에도 에너지화학공학부와 경영학부 공용 컴퓨터실을 제집 드나들 듯 침입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원을 감독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 국가정보원에서도 현장 감사에 나서면서, 유니스트에는 사건이 드러난 지 4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당초 이번 사건과 관련, 학교측이 범행 현장이 알려진 지 며칠 만에 학교 주변에서 범인을 붙잡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놓고 학내외에서 갖가지 억측이 나돌았다.
산학 협력 프로젝트 등 중요 파일을 보관하고 있는 과학기술원의 특성에 걸맞지 않게 건물 출입 시스템이 무방비로 뚫렸다는 점에서 학내외에 큰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다 정작 학교 측은 불법 체류자 신분이던 범인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고도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넘긴 배경을 놓고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사건은 지난 2월초 내부 직원의 제보를 받은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그 직후 울산지방경찰청은 자체 판단으로 수사에 착수한 지 사흘 뒤인 같은 달 10일 울산에 체류하고 있던 해당 유학생을 검거했다. 해당 유학생의 죄목은 '절도죄'와 '현주건조물침입죄'. 인도네시아에서 고교를 졸업한 2014년초에 장학생으로 유니스트에 유학 온 범인은 2017년까지 8학기를 모두 다녔으나, 졸업에 필요한 이수 학점을 채우지 못해 다음해인 2018년 9월, 제적됐다.
당시 범인을 직접 붙잡고도 학교측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은 학내외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혹으로 확대재생산돼 왔다. 실제 범인으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은 경찰은 학교 관계자에 대해 형법상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는 법률 검토를 했지만,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공무원 신분'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감안해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측의 이러한 어정쩡한 사건 처리는 비트코인 채굴에 이용된 컴퓨터실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새삼 조명받고 있다. 15일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당초 디자인·인간공학부 CAD실 27대 이외에도 에너지화학공학부 40여대, 경영학부 60여대 등 모두 130대의 컴퓨터가 가상화폐 채굴에 이용된 것으로 새롭게 드러났다.
피해 컴퓨실의 소속 학부가 특히 관심을 끄는 까닭은 재학생이나 제적생들에 대한 모든 관리를 맡은 학생처의 처장이 에너지화학공학부 소속 교수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알려진 이후 해당 유학생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만 넘기기로 판단한 곳도 학생처다.
이러한 연유로, 학생처장이 자신이 속한 학부의 피해 사실을 덮기 위해 사건을 유야무야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학교안에 떠들고 있다. 이와 관련, 유니스트 감사실은 현재 자체 감사를 실시하고 있어 향후 어떤 결과를 내놓을 지 관심거리다.
한편 울산지검은 3월초 현주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구속된 해당 유학생(22)을 '검찰시민위원회' 의견에 따라 기소유예 조치하는 온정을 베풀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되지만, 범행 후 정황이나 범행 동기·수단 등을 참작해 검사가 기소하지 않고 선처하는 것이다. 석방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인도네시아 유학생은 울산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관리 아래 본국으로 귀국했다.
울산=박동욱 기자 pdw717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