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임창정은 지난 6일 공개한 정규 15집의 첫 번째 노래 ‘일월’에서 “그토록 행복하라 했지만, 날 웃게 하는 건 시간”이라고 노래한다. 일견 연인과 이별한 뒤의 소회를 표현한 것 같은 가사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30년 차 ‘딴따라’의 노련함이 엿보인다. 임창정은 이 곡에 ‘올 마이 라이프’(All my life), 우리말로 ‘내 평생’이란 제목을 붙였다.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담은 노래라서다.
“우린 자주 스스로에게 ‘행복해지자’고 주문을 걸잖아요. 나중에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금은 이악물고 일하자고요. 그런데 돌아보면, 절 웃게 한 건 시간이었어요.” 최근 서울 논현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창정은 “‘일월’은 내 삶의 모토를 담은 노래”라며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나를 웃게 만든다’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심정인 걸까. 임창정은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웃게 될 거, 지금부터 웃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TV 바깥에서도 대중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연예인에게, ‘웃음’은 일종의 연중무휴 서비스다. 친근한 이미지인 임창정은 더더욱 그렇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그는 웃는다. “혼자일 땐 무표정하다가, 누가 아는 체 할 때만 웃으면 이상하잖아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제 신세가 처량 맞게 여겨질 법도 한데, 임창정은 오히려 “항상 웃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요즘 좋은 일 있냐’는 말을 많이 듣게 되고, 그러다보면 일이 더 잘 풀리는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웃음의 마법이 통한 걸까. 지난 몇 년 간 임창정에겐 경사가 겹쳤다. 매해 가을 발표하는 신곡들은 음원 차트 1위를 놓친 적이 없고, 2016년 결혼한 아내와 다섯 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어떠냐고 묻자 “넷째 때와 비슷하다. 넷째가 태어났을 때의 마음은 셋째 때와 비슷했다”는 농담이 돌아왔다. “하하. 사실 궁금해요. 어떤 목소리와 어떤 눈빛을 갖고 태어날지. 아이들이 다 다르게 생겼는데 다 나를 닮았어! 그게 정말 신기해요. 안 낳아봤으면 말을 말어~”
임창정의 노래는 ‘한국형 발라드’의 동의어로 쓰인다. 통속적인 가사와 멜로디, 뭇 남성들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고음 때문이다. 그는 “다방에 가면 커피(에스프레소)로 여러 음료를 만든다. 발라드도 그런 베이스 같은 음악”이라면서 “언제, 누가 불러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가수 윤종신과 만난 자리에서도 둘은 ‘우린 대단한 복을 타고났다’고 농을 쳤다고 한다. 발라드가 유행을 타지 않고 사랑받는 덕분에. 자신들이 오랫동안 음악을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임창정은 변화를 꾀한다. 이번 ‘십삼월’ 음반을 만들면서도 “(이전 음악과는) 달라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수록곡 대부분을 외부 작곡가의 손을 빌려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긴 시간 호흡을 맞춰온 작곡가 멧돼지는 물론, 정규 10집 수록곡 ‘조언’ ‘흩어진 나날들’의 가사를 쓴 작사가 이선화, 유생환·리카C 등 신인 작곡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임창정은 “멜로디와 가사에 진정성이 있고 의도가 순수하면, 듣는 분들은 좋아해주신다”며 “다만 편곡을 요즘 스타일로 바꿔보려고 했다”고 귀띔했다.
정규 1집 ‘이미 나에게로’를 낸 지도 어느 덧 25년. 임창정은 여전히 음악이 재밌다. 인터뷰 중에도 몇 번이나 “잠시 노래 좀 들려드릴까요?”라며 신곡 소개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한 달여 간 휴식을 가진 뒤, 오는 10월부터 다시 음악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사랑, 이별, 인생…. 자신이 보고 듣고 겪고 느끼는 모든 것이 임창정에겐 영감이 된다.
“계속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요? 재밌어요, 그냥. 제가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다른 악기를 타고 내게 들려올 때, 데모 버전을 들었을 때, 가이드를 들었을 때, 믹싱을 마치고 들었을 때, 모두 흥분되고 즐거워요. 그건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죠. 정말 신기한 게, 저도 프로페셔널이잖아요. 그런데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그들의 팬이 돼요. (직업을 떠나) 일반인으로 즐길 수 있어요. 그게 음악의 매력이에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