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초부터 문재인 정권의 ‘무능력, 무기력 외교’가 또 한 번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생일 축하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힌 데 대해 11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남한은 설레발 치면서 주제넘게 끼지 말라’면서 이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김계관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남조선당국이 숨가쁘게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대긴급통지문으로 알려온 미국 대통령의 생일축하 인사라는 것을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친서로 직접 전달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김계관은 “남조선당국은 조미(북·미) 수뇌들 사이에 특별한 연락 통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며 “새해 벽두부터 남조선당국이 우리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미국 대통령의 생일 축하 인사를 대긴급 전달한다고 하면서 설레발을 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집안 족속도 아닌 남조선이 우리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미국 대통령의 축하인사를 전달한다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는데 저들이 조미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보려는 미련이 의연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은 우리가 무슨 생일 축하 인사나 전달받았다고 하여 누구처럼 감지덕지하며 대화에 복귀할 것이란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며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또 ”수뇌들 사이에 친분관계를 맺는 것은 국가들 간의 외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남조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중뿔나게 끼어드는 것은 좀 주제넘은 일이라고 해야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내는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정의용 실장의 설명과는 달리, 북한은 직접 생일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고 북미 간에는 상시적 핫라인이 구축되었다는 사실도 북측은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계관은 “(김정은·트럼프)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혹여 우리가 다시 미국과의 대화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가진다거나 또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가 보려고 머리를 굴려보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며 1년 반 넘게 속고 시간을 잃었다”며 “다시 미국에 속아 시간을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조미 간 대화가 다시 이뤄지려면 미국이 북한의 요구 사항들을 전적으로 수용해야 하지만 미국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또 ”일부 유엔 제재와 나라의 중핵적인 핵시설을 통째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베트남에서와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과의 협상을 미루면서 자꾸 북미대화의 시간 끌기를 하고 있고, 이런 과정에서 북미회담은 지연되면서 미국의 대북제재는 강화되어 지금과 같이 북미대화가 교착국면에 빠지면 북한체제는 갈수록 고립되어 경제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국이 노리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소위 미국은 대화하는 척하면서도 김정은 체제에 경제적 고립을 강화시켜 체제 붕괴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은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과 같은 북미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하루속히 북미 관계를 재개하여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경제제재는 완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북미 담판 외교를 겨누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런데 미국은 영변 핵시설은 물론이고 나머지 핵무기들도 모두 폐기하는 전제조건하에서만 북미대화의 진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북한의 핵 폐기만이 정상적인 북미대화의 작동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회담 결렬을 선언하면서 김정은에게 ‘핵 폐기 의사가 있으면 다시 북미대화를 재개하고 그런 의사와 약속을 이행할 생각이 없으면 북미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최종 메시지를 던지고 회담장을 걷어차고 나와버린 이후, 김정은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 생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의하면 김정은은 분명 ‘핵 폐기’를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향해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다그치고 있다. 그래서 지금 김정은은 북미회담을 주장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주장하지 않고 있고 요구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와 관련된 모든 사안은 그의 부하들의 몫으로 책정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북미대화의 직접적 책임당사자로 전면에 나서서 책임지는 역할을 직접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교착국면을 연장하여 대북 제재국면을 장기화할 수도 없는 처지인데다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재일우(千載一遇) 격으로 붙잡은 북미관계를 깰 수도 없는 삼중고(三重苦)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명확하다. 핵심은 김정은을 잘 어르고 달래서 미국에 대해 불미스러운 위험한 불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김정은이 자신에게 약속한 핵을 포기하면 대북제재를 풀어주어 북한이 경제적 발전국가로 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전략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북미회담은 언제든지 열 수 있고 경제제재는 언제라도 해제할 수 있으니 ‘핵을 폐기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혁명수비대(IRGC) 최고 사령관 술레이마니를 드론 폭격으로 조준 사살시켜 이란과의 관계가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만큼은 직접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어 아주 특별한 관계임을 보여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대북 친서 외교는 김정은에게 ‘병 주고 약 주는 외교’이다. 술레이마니에 대한 드론 조준 폭격 사살은 만일 북미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때, ‘김정은 당신도 언제든지 이렇게 제거할 수 있다’는 간접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때 세계여론을 얻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보인다. 단순한 축하 메세지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트럼프)는 당신(김정은)과의 관계를 특별한 우정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서 김정은을 꽁꽁 묶기 위한 전략적 의도로 김정은에게 특별한 생일 메시지까지 보낸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의도는 김정은으로 하여금 ‘쓸데없는 대미 도발을 강행하여 나와 당신과의 이런 좋은 우정의 관계를 망가뜨리지 말고 잘 가자’는 의미와 더불어 적대적인 경거망동(輕擧妄動)을 통해 미국 대선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핵 폐기 결심이 섰으면 언제든지 북미회담을 열어 핵 폐기와 동시에 대북제재도 해제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생일 메세지는 전세계 여론을 향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추수감사절에 미사일 발사라는 위협을 선물로 보냈지만 나는 그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생일 축하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자, 전 세계 시민들 보십시오. 나(트럼프)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에게 악을 선물로 보내도 나는 선행으로 보답합니다'라는 역설적 메세지가 담겨 있는 것이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생일 축하 메세지인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을 향한 생일 메시지 전달은 북미 간의 매우 고차원적이고 민감하며 섬세한 고난도의 외교적 수(手)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또 하나의 ‘난수표와 같은 고차방정식의 외교적 복잡성'를 담고 있다. 북한으로서도 트럼프와의 외교적 수 싸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 이유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고 있는 ‘핵 폐기하면 경제제재를 해제해 줄 수 있다’는 제안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경제제재도 해제시키는 것이 대미전략의 목표이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생일 메시지 전송은 북미 간의 치열한 고차방정식의 심리적 외교백병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외교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 싸움’의 과정에서 미국이 두었던 또 하나의 외교 포석이었다.
그런데 이런 복잡계의 외교적 상황의 처지도 모른 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불쑥 나타나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생일 메시지 전달의 중개자로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계획이 남한의 어설픈 설레발 외교 때문에 한 순간에 망쳐 버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화들짝 대남담화문까지 발표하여 "너(남측) 여기 끼어들지 마"라는 경고메세지를 보낸 것이다. 자칫 트럼프의 장난에 넘어갈 수도 있고 트럼프가 역으로 이용한 '트로이 목마'일수도 있다고 본 것이 북측의 속사정인 것이다.
현재 북미간에 전개되고 있는 이런 '외교적 복잡계의 고차방정식'을 남측의 3류 운동권들의 1차방정식 수준에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김계관의 담화문 내용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생일 메지지 전달 역할자로 나섰다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발표는 '대국민 거짓 조작외교'란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창피하고 수모이고 굴욕적이며 야비하고 비열한 국가 망신외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와 정의용 실장은 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그 내막을 전부 공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야당과 언론은 이 문제를 집중추궁해야 할 것이다. 일찌기 이런 치욕적인 외교는 1905년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허망하게 빼앗긴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없었던 것 같다. 이게 나라냐?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