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살면 치료도 포기하나"...희귀질환 환자들, 치료제 막혀 발 동동

"지방살면 치료도 포기하나"...희귀질환 환자들, 치료제 막혀 발 동동

기사승인 2020-02-08 03:00:00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 #울산에 거주하는 강직성 뇌성마비(사지마비) 환자 김영수씨(27·가명). 지난 달 급성폐색전증이 온 뒤 심한 강직과 발작이 나타났고, 치료를 위해 척수강내 약물주입펌프 시술을 받았다.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병원을 방문해 약물을 주입받아야 한다.

그런데 시술 한 달 뒤 날벼락이 떨어졌다. 희귀의약품에 해당하는 치료제(바크로펜 주사제)의 배송이 중단된다는 것. 치료제를 얻으려면 환자나 보호자가 직접 서울에 위치한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김씨와 가족들은 "만약 약을 타러 서울을 오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시술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방에 살면 치료권도 없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희귀질환 환자에 대한 의약품 지원 사업이 줄줄이 끊겼다. 환자와 보호자는 물론 지역 의료진들도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희귀의약품을 환자나 의료기관으로 보내주는 위탁배송 사업을 이달 5일자로 종료했다. CBD오일 제품 대상 거점약국 사업도 지난달 중단했다. 센터는 이같은 사실을 각각 지난달 23일, 지난달 2일 공지했다.

기존에 의료기관이나 거점약국으로 배송되던 치료제를 앞으로는 환자나 보호자가 직접 서울 센터를 방문해야만 구할 수 있게 됐다. 의약품은 과다복용이나 변질우려로 대량 수령이 불가능하다. 일부 의약품은 온도변화 등에 민감해 환자가 직접 수령하더라도 의료기관에 맡겨 보관해야 하는 불편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중단 통보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치료권 박탈'이라며 반발했다. 김씨의 보호자인 이희주씨(51세·가명)는 "설 전날 (배송 중단)통보가 오더니 그 다음주인 5일 중단됐다. 이런 일을 직전에서야 알리면 어떡하느냐"며 "아들은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기적으로 서울을 오가야 한다니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병원, 희귀의약품센터,식약처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다. 주변에서는 국민청원을 올리라고 한다"며 "우리가 극빈국에 사는 것이냐. 택배비가 부담이면 환자 부담을 조금 높이면 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의료현장에서도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서울에서 떨어진 지역일수록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을 구하기가 까다로워졌기 때문. 김씨가 받은 약물주입펌프 시술처럼 희귀의약품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의료행위의 경우 지방병원이나 지방 거주 환자에게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장원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약물주입펌프 시술을 받는 환자들은 뇌나 척수 신경계를 다치신 분들이라 약을 타러 본인 스스로 이동하기는 매우 어렵다. 서울 분들은 장애인 택시라도 이용할 수 있지만, 지방에 있는 분들은 힘들지 않겠느냐"며 "해당 치료가 필요해도 지방에 거주하는 분들에게는 권하기가 어려워졌다. 지방에 있는 의료진들도 이제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허탈하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예산 부족'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센터는 올해 필요예산으로 총 140억 가량을 요구했지만, 정부의 인정액은 이 중 17%인 23억 9400억원에 불과했다. 아직 진행 중인 다른 사업 등도 중단 위기다.

향후 환자들이 약을 타러 센터에 몰릴 경우도 문제다. 복약지도가 가능한 약사인력이 부족하기 때문. 센터 내 15명 가량이 약사직군이지만, 이 중 민원 담당자는 전무하다. 이번에 중단된 위탁배송사업의 기존 배송지는 약 6000여곳에 이른다.   

센터 관계자는 "올해 예산 부족으로 부득이하게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상위기관인 식약처에 올해 필요한 예산분을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현재로써는 대안을 찾고 해결하도록 노력 중이다. 예산만 반영된다면 재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이 많이 몰리는 비상 시에는 약사 직원들을 민원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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