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모든 걸 바꾼다. 영화 ‘온다’(감독 나카시마 테츠야)는 ‘그것’의 정체를 밝히거나 때려잡지 않는다. 항상 주변에서 맴도는 ‘그것’을 통해 인물들의 진짜 모습을 해부하고 조금씩 망가트린다. 쉴 틈 없이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이미지와 이야기가 134분 동안 이어져 눈을 뗄 수 없다. 질리다 못해 지칠 정도다.
‘온다’는 누가 봐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 히데키(츠마부키 사토시)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우연히 마트에서 만난 카나(쿠로키 하루)와 결혼해 딸 치사를 낳은 히데키는 직접 육아 블로그까지 운영하며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어느 날 회사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누군가를 맞이한 동료가 원인 불명의 병으로 고통받다 사망하는 일이 일어난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친구의 실종 사건을 기억해낸 히데키는 ‘그것’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닫고 오컬트 작가 카즈히로(오카다 준이치)에게 마코토(고마츠 나나)를 소개받는다.
로맨스부터 드라마, 호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담아낸 ‘온다’가 향하는 건 섬뜩한 분위기 그 자체다. ‘그것’의 존재감을 활용해 긴장을 잠시도 늦추지 않는다. ‘온다’는 특정한 결말을 보여주거나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지치지 않는 경주마처럼 폭발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 주인공을 바꿔가며 개인의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국가가 개입하는 커다란 재난으로 변해가는 전개를 서사의 확장으로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숙주를 바꿔가며 생명을 이어가는 바이러스의 본능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이 서로 누가 더 생명력이 질긴지, 누가 더 강한 의지를 지녔는지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온다’는 ‘그것’의 정체를 설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행동의 명확한 이유도 언급하지 않는다. 단순히 운이 없어서 옮겨붙은 저주일수도, 과거의 잘못으로 파생된 원한일 수도 있다. 또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현재의 인간에게 하늘이 내리는 벌로 읽을 여지도 있다. 원인과 목적을 모르니 대안을 내놓거나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그에 따라 ‘그것’의 정체도 조금씩 다르게 비친다.
영화 ‘곡성’, ‘클로젯’ 등 무속신앙을 다룬 한국 오컬트 작품들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인물들의 드라마를 놓지 않고 가는 점에서 결이 크게 다르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를 원작으로 했다. 26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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