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은 집권여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세계질서를 바꿔놓고 세계경제까지 멈추게 만든 코로나바이러스의 광풍이 4.15총선까지도 초토화시켰다. 코로나 재앙은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너 과거에 대한 기억을 멈추게 했고, 야당엔 죽음의 쓰나미를 몰고 온 정치적 재난을 안겨줬으며, 집권 여당에게는 ‘민주적 독재정치’가 가능하도록 의회 권력을 독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당장 가장 큰 걱정거리는 민주공화국에 기반 한 대한민국이라는 ‘국체의 운명’이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이 나라에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발전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이다. 행정권을 장악하고 사법권을 무력화시킨 현 집권세력이 의회권력을 완전 장악했다는 점은 민주주의를 불능상태에 빠뜨릴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런 위험성은 공수처 출범을 통해 현 집권세력들과 관련된 모든 부정부패사건을 덮을 수 있게 되었고, 문 정권의 권력부패에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같은 민주주의 원칙들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반면에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사찰, 미행, 감시, 억압, 탄압의 기능은 더욱 활발해 질 것이다. 특히 현 집권세력의 불법과 특권을 통한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권력 사유화에 대한 브레이크 장치가 없어지면서 사실상 윤석열 검찰총장의 검찰권이 무력화되는 상황에 빠질 것이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의 기능을 거세시키는 것이며, 사실상 ‘법의 지배’라는 법치주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발생시킨 이번 선거에서 왜 여당은 180석 가까운 의석을 얻는 압승을 거두었고, 야당은 최초로 전국선거에서 4연패하며 역대급 참패를 당했는가? 그 원인은 무엇이고, 향후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심층 진단해 보고자 한다.
이번 선거 과정을 선거의 세 가지 핵심 요소인 인물, 구도, 바람(전략)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총선 출마 후보를 뽑는 공천과정에서 여야는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감만 안겨줬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문심’을 대변한다며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다. 또한, 그동안 조국 사태와 공수처 문제 등과 관련해서 친문 주류세력과 입장을 달리하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반문’ 인사들 대다수가 탈락한 데 반해, 기득권의 상징인 86세대와 ‘친문’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게다가 ‘공수처’ 설치를 위해 군소 야당과의 추악한 거래 속에 탄생시킨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자기들 스스로 이를 부정하며 비례 위성 정당까지 만드는 ‘꼼수의 극치’를 보여줬다. 미래통합당의 경우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탄핵과 보수 몰락에 책임 있는 중진들을 비롯한 현역 의원들을 대폭 교체한 점은 긍정적이었지만, 그 빈자리가 대부분 전직 의원들이나 기성 정치인들로 채워졌다. 이른바 ‘돌려막기 공천’이라는 비판 속에 변화의 상징성을 갖고 중도표를 끌어올 수 있는 인물을 대거 발탁하는 공천 혁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공천 막판에 불거진 사천 논란과 최고위의 공천 무효 결정, 그리고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 잡음 등은 ‘반문 전선’의 기치를 내건 중도보수 통합을 통해 면모를 일신하려던 통합당의 전략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왔다. 공천 혁신을 통해 중도층을 견인하려던 총선 전략은 수포로 돌아갔고, 돌아온 것은 후보들의 ‘막말 퍼레이드’와 중도 유권자들의 철저한 외면이었다.
지난 20대 총선과는 달리 이번 총선은 여야의 1대1 구도 속에서 치러졌다. 국민의당이라는 중도 제3정당의 변수가 사라지면서 선거는 일찌감치 민주당과 통합당의 양당 대결로 굳어졌고,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으로 나누어진 양당의 선명한 대립 구도 속에 보수와 진보 간의 진영 대결 양상도 두드러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명해진 양당 대결에 걸맞은 대립 전선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는 국정의 연속성과 안정 기조에 방점을 둔 민주당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공략해야 했던 통합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시작부터 문 정권의 급소를 때리는 심판 이슈들을 쉴 틈 없이 제기하면서 대립축을 강화시켜 선거 국면을 주도했어야 했는데, 선거 기간 대부분을 코로나 이슈에 끌려다니다가 선거 막판에서야 ‘조국을 살릴거냐, 경제를 살릴거냐’, ‘코로나 경제시대냐, 고통 끝 경제회복이냐’ 등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또한, 양자 대결 선거 구도가 명확해질수록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중도표의 중요성이 커지게 마련이다. 팽팽한 양 진영 간의 싸움에서 중도의 균형추가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선거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중도 표심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느냐가 이번 선거의 최대 관건이었다. 선거 초반 경제 실정과 조국 사태 등으로 상당수 중도 지지층을 빼앗긴 민주당은 선거 중반 이후부터 ‘코로나 위기 극복’ 프레임으로 잃었던 중도 표심을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이에 반해 통합당은 중도 표심을 자극할만한 인물과 이슈 선점에서 실패했다. 오히려 잇단 막말 파문과 대안 정당으로서의 이미지 메이킹 실패로 중도 표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자초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대전 충청 등 중도 표심을 좌우하는 지역에서의 전례 없이 참담한 패배로 나타났다.
역대 총선에서 야당의 필승 요인은 ‘바람’이었다.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까지 장악해서 탄탄한 조직을 갖춘 정부 여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부동층의 지지를 견인하고 강력한 조직의 힘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바람’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의 바람은 엉뚱하게도 여당 쪽으로부터 불어왔다. 바로 ‘코로나 블랙홀 광풍’이 몰아닥친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선거 전망은 야당에게 유리했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 파탄과 조국 사태가 촉발시킨 공정과 정의의 문제,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윤석열 검찰 학살을 통한 민주주의 파괴 등은 정권심판 이슈를 점화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19의 대확산’이 만든 코로나 블랙홀이 문 정권의 모든 과거 실정을 집어 삼켜버렸다. 아니 기억에서 흔적조차도 지워버렸다. 초기 방역 실패로 전국적인 대유행 단계에 들어서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데도 야당은 수수방관하면서 ‘코로나 심판 정국’ 을 주도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역으로 여당의 ‘코로나 위기 극복’ 프레임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전염병 대유행이라는 공포와 불안 속에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가 오히려 국민들의 안정 희구 심리를 자극했다.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19 방역’을 필승 선거전략으로 삼고 ‘국민을 지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안정론’을 확산시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야당은 ‘코로나 위기 극복’ 프레임을 무너뜨릴 ‘필승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 중국발 입국 허용에 따른 방역 대실패로 225명의 사망자와 1만6천명 가까운 확진자를 발생시킨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대만, 홍콩, 베트남 등의 모범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방역 성공’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험에 빠뜨린 방역 실패 정권’의 프레임으로 역공을 취했어야 했다. 아울러 의료진의 뛰어난 방역 능력과 우리의 첨단 IT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미래의 방역 정책과 경제 위기 극복의 청사진으로 대안 정당의 이미지를 각인시켰어야 했다. 이를 통해 야당이 집권하면 ‘코로나로 위험에 빠진 국민 목숨도 살리고, 경제 실정으로 도탄에 빠진 국민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어야 했다. 그러나 야당이 선거판을 뒤흔들 바람몰이에 실패하고 여당에게 선거 국면의 주도권을 빼앗긴 채 끌려다니면서 이번 선거는 특별한 쟁점도 이슈도 없이 매일매일 코로나19 확진자 수 변화에만 국민들 시선이 고정되는 ‘깜깜이 선거’가 되어 버렸다. 선거 막판에 중도 표심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결정타를 날린 야당 후보들의 ‘막말 퍼레이드’가 가진 메가톤급 선거 파급력도 어찌 보면 그만큼 이번 선거가 특별한 이슈 없이 치러졌다는 방증인 것이다.
이와 같은 선거 과정에서의 원인뿐만 아니라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갖고 있는 다음과 같은 자체적인 한계가 이번 총선 참패를 가져온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첫째, 미래통합당에 두 가지가 없었다. 하나는 미래가 없었고, 다른 하나는 통합이 없었다.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나라를 망치는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기 위한 ‘반문 전선’의 깃발 아래 중도와 보수세력이 하나로 뭉친 정당의 당명에 맞는 미래 비전과 통합의 정신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과감한 혁신과 시대 변화에 맞는 진취적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은 자취를 감췄고,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들도 보이지 않았다. 통합 또한 내부 갈등을 해소한 화학적 통합이라기보다는 일단 ‘뭉치고 보자’는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주요 고비 때마다 과거의 계파 갈등을 연상시키는 분열적 행태가 반복됐다. 결국, 입버릇처럼 되뇌던 혁신은 구호에만 그쳤고, 또다시 ‘친박이냐 친이냐’, ‘탄핵이냐 반탄핵이냐’만이 난무하는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퇴행적 정당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했다. 여기에 당내 친박, 친이계 소액 주주들이 자신들의 지분 챙기기에 급급하고, 분열을 선동하던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서 자기선동의 정치를 하고 다니면서 보수 내부의 심리적 분열은 더욱 커져만 갔다.
둘째, 정부 여당을 대체할 대안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이라는 여당의 프레임을 무너뜨리고 이를 ‘방역 실패 정권 심판' 프레임으로 대체하지 못했다. 또한, 경제 실정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코로나 이전의 경제 참상에 대한 문 정권의 책임론을 명확하게 부각시키고, 코로나 이후 경제회복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경제가 확실히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를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보수 집권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결국, 잠복된 보수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거나 중도층에게 왜 야당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렇다 할만한 이유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셋째, 몰락한 야당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부족한 탓에 일사불란하고 강력한 전투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탄핵과 분열, 그리고 대선 패배를 통해 많은 국민들로부터 비판받고 외면당한 데 대한 뼈저린 반성과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치룬 선거라고 보기에는 절박감이 부족했다. 제대로 된 반성과 성찰이 없으니 새로운 길이 보일 리 만무했다. 탄핵 사태와 대선 패배로 왜 멀쩡한 정권을 빼앗겼는지에 대한 통렬한 원인 분석을 통해 총선 승리의 반면교사로 삼았어야 했지만 그런 애타는 절절함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웰빙정당이라는 주홍글씨를 다시 연상시키는 안일하고 무기력한 선거운동으로 나타났다. 선거 초반부터 이슈를 선점해서 기선을 제압하고 심판의 분위기를 고조시켰어야 했는데, 코로나 정국에 막혀 힘을 쓰지 못했고, 숨어 있는 샤이 보수에만 기대는 듯한 나약한 인상을 주었다. 선거 중, 후반으로 가면서 중구난방으로 막말이 터져나오고, 각개 약진 형태의 선거운동이 이뤄졌으며, 단일대오 하에서의 일사불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리멸렬한 모습 등은 중도층로부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외면과 비판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야당의 참패는 확장성 부족, 전투력 부재, 포용과 통합의 결핍, 미래보다 과거의 지배 등이 결합된 결과로 분석된다. 이 상태로라면 2년 후 대선도 해보나 마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제 총선 승리로 더욱 오만해진 문재인 정권은 반민주적 권력 사유화, 사회주의식 경제정책의 가속화, 반미, 친북, 친중 노선의 강화를 통한 한미동맹 와해와 안보 무장해제, 나라 곳간 거덜 내는 퍼주기 포퓰리즘 정책 폭탄 등을 쏟아놓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이런 야당이라면 이를 저지하기는커녕, 제아무리 유리한 호기(好機)가 주어진다 해도 집권이 불가능하다. 설사 집권 여당이 적국과 전쟁을 해서 적에게 연전연패당하고 방어선이 무너져 국민의 생명을 순식간에 적진의 위협 앞에 몰아넣는 상황을 맞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야당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 적의 악재를 나의 악재로 만들어서 적의 호재로 만들어 주는 ‘트로이 목마’와 같은 야당으로 집권은 백년하청이다. 적의 호재도 적의 악재로 만들 수 있는 전략 전술이 부재한 정당에게는 국민이 죽어가고 국가가 망해가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방법을 기대할 수 없다.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못 살게 만드는 문 정권의 폭주에 대항해서 나라를 구하고 국민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후의 보루인 강력한 야당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야당을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혁신이라고 제기됐던 방안들이 모두 구태로 보일 정도의 강도 높고 전혀 새로운 차원의 탈바꿈이 없이는 안 된다. 지금 폭정의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시대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포용과 확장을 통한 대통합의 정치를 실천하는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강력한 야당의 재탄생을 고대하고 있다. 그 애타는 목소리에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