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민규 기자 =한방 첩약의 급여화 추진에 대한 의료계의 반대가 거세다. 여기에 한약사들도 반대 입장을 밝히며 향후 시범사업의 험로가 예상된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올해 10월부터 뇌혈관질환 후유관리,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등 3개 질환에 대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대규모 반대집회를 개최한 대한의사협회는 3일 첩약보험 시범사업 정부의 최종안이 논의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 앞서 긴급집회를 열고 ‘국민건강에 위해하고 건강보험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다시 한 번 시범사업의 철회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의사협회 변형규 보험이사는 “안전성도 검증되지 않은 한방첩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얼마나 국민건강에 위해를 끼치고 건강보험재정을 낭비시키는지 건정심 위원과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싶다”며 “반드시 시범사업 철회를 이끌어 내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의협은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하는 전문가 단체로 한방첩약 급여화를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건강보험 재정이나 한의계와의 직역간 다툼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오늘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문가뿐만 아니라 환자단체도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음에도 검증되지 않은 첩약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오히려 시범사업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겠다는 것이 보건복지부 입장에서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되묻고 싶다”고 질타했다.
전문 의학회들도 안전성·유효성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첩약의 건강보험 급여 추진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첩약 급여와 관련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안에 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현재까지 세부적인 관련규정, 원내·원외탕전실 등 관리기준, 약제규격 및 원료함량 등 기준이 미비함을 지적된 바 있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첩약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구축기반 연구’ 보고서에서도 첩약의 안전성 및 유효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대한한의사협회 역시 연구 보고를 통해 첩약에 대한 표준화는 현실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는 것이다.
대한뇌졸중학회(이사장: 권순억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첩약은 성분 분석조차 되어 있지 않아 안정성과 유효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이며, 식품에도 의무화되어 있는 원산지 표기조차 전무한 상태로 한약재의 재배 및 유통과정 중에 유입될 수 있는 오염물질과 독성물질에 대한 우려가 커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후유증을 겪는 뇌졸중 환자들에게 매우 시급한 식욕촉진제나, 뇌졸중 후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신경통증완화제는 아직까지도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한방 첩약보다 후 순위라는 것이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의 입장에서 매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에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았고 표준화조차 이뤄지지 않은 한방 첩약을 무리하게 시범사업으로 급여화하는 시도는 국민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될 수 있다며, 무리한 시범사업 추진보다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중심의 검증 절차를 거쳐 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영상의학회도 현대 의학의 기본은 근거기반 의학이며, 근거가 있어야 환자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전제는 한의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 논문을 인용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사업을 다국적 대규모 임상 3상 연구와 동등한 근거로 비교할 수는 없다고 첩약 급여화 추진에 반대했다.
이어 임상연구를 진행하지 않아 근거가 불충분하고, 포함된 재료가 표준화되지 않았고, 유통이 투명하지 않아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인지 알 수 없는 첩약을 환자들에게 투여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도덕적 해이인데 지금도 건강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중증질환자들을 생각하면 정부의 성급한 급여화 추진은 건강보험의 기본 취지를 망각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피부과학회도 같은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학회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원칙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과학적 연구결과로 입증된 행위나 약제들 중에서 비용효과성과 사회적 요구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 시행해야 한다”라며 “현재 대다수 한약은 안전성,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학회의 많은 회원들이 경험한 한약에 의한 중증 피부부작용과 같은 한약제 안전성에 대한 현실적 우려를 감안할 때, 한방첩약 관련 사업확대에 앞서 그 안정성에 대해 고민과 검증절차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한약의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거나 수집하는 별도의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고, 특히 개별 첩약의 성분 및 기원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첩약 급여화에 따른 무분별한 한약사용이 야기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며 “대다수 한약이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안전성, 유효성이 자료가 거의 없음에도 급여화를 추진하는 것은 건강보험 등재의 원칙을 무시한 처사이며 국민건강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한방의료 전반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한약사들도 조제과정의 안전성 유효성 균일성 확보되지 않았다며 첩약보험에 반대하고 나섰다.
대한한약사회(회장 김광모)도 3일 건정심 소위원회가 열리는 회의장 앞에서 첩약의 건강보험 급여추진 반대 피켓시위를 진행했다.
한약사회는 한약에 대해서 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보험약은 최소한의 안전성과 유효성, 약효 균일성을 확보해야 하며 과다처방과 약물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처방자와 조제자가 분리되는 분업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대상질환 중 월경통은 보약과 다이어트 한약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약사회 김종진 부회장은 “한약은 조제와 탕전 과정에 따라서 같은 약재를 투입하더라도 그 결과물인 한약의 유효성분 함량이 천차만별이 된다”며 “조제 과정에서의 안전성과 유효성, 약효 균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제 과정을 표준화하고 조제의 전문가인 한약사가 조제를 해야 한다”하고 주장했다.
이어 “무면허자에 의해 조제된 한약에 국가보험을 지급하면 환수대상임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이에 대한 대비책 없이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조제 과정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대상질환 중 월경통 처방은 대부분 보약 약재로 구성되어 조금만 가감하면 보약과 다이어트 한약으로 변용될 가능성이 높아 치료용 목적이 아닌 보약과 미용 목적의 한약에 국민보험 재정을 투입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 것”이라며 월경통 처방을 삭제하거나 그보다 더 근본적 해결방안인 의약분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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