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불편하고 기괴하다.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감독 조경훈)의 스토리는 세속적인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데서 나타난 부작용을 괴담으로 풀어낸다. 어둡고 낯선 만화적 상상력으로 호기심을 끌어내 자꾸만 다음 내용을 기대하게 된다. 반면에 고민의 흔적 없이 풍자를 이어가는 안일함은 불편한 잔상을 남긴다.
‘기기괴괴 성형수’는 톱스타 미리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며 외모 스트레스에 괴로워하는 예지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우연히 출연하게 된 홈쇼핑 방송으로 수많은 네티즌들의 악플을 받은 예지는 어느날 ‘성형수’ 이벤트 당첨 문자를 받는다. 예지는 반신반의하며 바르면 성형이 되는 성형수를 얼굴에 발라 완벽한 미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긍정적인 시선을 받는 새로운 삶을 즐기지만 살이 찌자 다시 성형수를 사용할지 고민에 빠진다.
‘기기괴괴 성형수’는 주인공 예지를 응원하거나 돕지 않는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냉철한 시선으로 그가 선택하는 전개를 지켜본다. 외모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인 세계관이지만 어딜 봐도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눈앞에 펼쳐지는 건 절망의 늪이다. 어떤 걸 선택해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불공평한 게임이 이어지고 주인공의 고통과 새로운 추락을 지켜보게 된다.
이는 ‘기기괴괴 성형수’가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현실을 풍자하는 대신 장르적 재미를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외모 콤플렉스로 좋아하던 무용을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선택한 예지는 아무 잘못도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에게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과 욕망을 해소할 기회를 주고, 마치 그 기회를 잡은 걸 죄를 저지른 것처럼 끊임없이 괴롭힌다. 사회가 만들어낸 잘못된 욕망을 지적하는 방법으로 평범한 여성을 이용하는 이 영화에 최소한의 윤리적 고민이나 타인에 대한 감수성, 사회적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5년 발표한 원작 웹툰에 담긴 에피소드와 설정, 인물들을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다. 따로 떨어진 조각들을 모아 1시간25분 분량의 스토리로 이어 붙였다. 원작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예측 불가능한 전개가 영화의 매력이다. 동시에 원작이 고려하지 못한 공백들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메워지지 않았다는 점은 커다란 패착으로 남는다.
오는 9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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