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당국은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회색 코뿔소’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회색 코뿔소란 세계정책연구소 소장 미셸 부커가 2013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끊임없는 경고 신호가 있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 요인을 말합니다.
지난해 시중은행은 사상 최대 순이익을 냈고, 연체율도 최저 수준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금융 시스템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금융당국은 꾸준히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인 위험 요인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발 긴축과 금리 인상을 리스크로 지목합니다. 하지만 내부적인 요인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가계부채와 더불어 부동산 시장의 위축도 우리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부동산 시장의 위축은 거시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국내 가계 자산의 상당수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어서입니다. ‘알기쉬운 경제’에서는 부동산시장의 변동성과 금융시장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고공행진하던 주택시장 침체기 도래↑…거래량 줄고 미분양 급증
지난 몇년 간 국내 주택시장은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고점’이라는 우려에도 시장 가격은 고공행진했습니다. 부동산114 실거래가지수 기준으로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88%, 수도권 64%입니다. 이는 특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가파르게 오른 까닭은 당국의 저금리 기조와 전세자금대출 완화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애초 정부는 전세난민 해결과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전세자금 대출을 완화했으나 역설적으로 갭투자를 부추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보증금 승계 거래 가운데 임대 목적, 갭투자로 신고한 거래 건수 비중은 서울 기준으로 2020년 35.6%에서 2021년에는 7월까지 43.5%까지 상승했습니다. 경기, 인천 역시 각각 21.9%에서 26.8%, 17.9%에서 33.5%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견고한 주택시장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락 신호는 이미 나타나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아파트 거래대금은 3조원 수준으로 전년동기(31조원) 대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올해 1월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도 전월대비 10.5% 감소했습니다.
미분양 물량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1만7710가구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월(1만4094가구) 대비 25.7% 늘어난 수치로, 같은 해 9월(1만3842가구)부터 3개월 연속 증가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아파트 공급도 대거 늘어날 예정입니다.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올해 아파트 분양 예정물량이 지난해 대비 23% 증가한 34만6000호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주택시장 하락 시 금융시장 충격 커진다
주택시장이 하방 압력을 받는 것은 주택 공급 확대 보다는 대출 규제 강화와 같은 수요 억제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적극 인상해 전체 유동성을 축소했고, 금융당국은 DSR 규제와 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해 투기 수요뿐만 아니라 과소비성 주택 실수요를 억제했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는 과열된 시장 분위기를 억제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시장이 경착륙될 경우 발생하는 리스크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현재 국내 가계자산의 상당수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어서입니다. 우리나라 가계의 총자산 대비 실물자산 보유 비중은 64%로, 미국(29%)이나 일본(38%) 등 선진국 보다 높습니다. 이는 주택시장 하락이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이 커지게 되면 주택시장 하락 시 채무불이행 가능성도 커집니다.
은행의 자산건전성 지표인 부실대출비율은 대체로 부동산 가격상승률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부실대출비율은 1980년대말 부동산가격 급등기에는 하락했으나 부동산가격이 폭락한 외환위기 당시에는 급등했습니다. 2012년 전국 주택 가격이 5.6% 하락했을 당시 은행의 신규 연체 금액은 전년동기 대비 37.5% 증가했습니다.
국내 은행들의 수익 구조도 이러한 부담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은 이자이익 비중은 타 선진국 대비 높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은행의 총 영업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86.15%인데 비해, 비이자이익은 13.85%에 불과했습니다. 총자산대비 비이자순수익 비율은 0.24% 수준입니다. 반면 같은 상업은행인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50%가 넘습니다.
미분양도 금융사에게는 골칫거리입니다. 미분양이 늘어나면 그만큼 PF대출 부실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증권사, 보험사, 저축은행의 PF 비중은 어느 때 보다 큽니다. 2020년 말 기준 국내 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은 88조4838억원으로 2016년말 (47조256억원)에 대비 4년만에 41조4582억원(88.2%) 증가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발 빠른 부채 구조조정입니다. 다만 최근 대선과 맞물리면서 각 정당 대선 후보자들이 규제 완화 기조로 가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