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원인으로 ‘자진 월북’을 꼽았지만 정부가 바뀐 후 월북을 단정할 근거를 못 찾았다며 2년 만에 결과를 번복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건 규명이 더 진행될 수 있다는 발언을 남겼고 감사원은 즉각 감사에 착수했다.
17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해경의 입장번복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권력에 의한 음모론 기획’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론’을 꺼내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지난 16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지난 2020년 9월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 해역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씨의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서 해경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군 당국의 첩보와 피해자 도박 빚 등을 근거로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결과를 냈다.
해경의 입장번복에 국민의힘은 공무원 피살 사건이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점을 지적하면서 자체적인 테스크 포스(TF)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국힘 “서해공무원 피살 TF 구성하겠다...진상규명 해야”
국민의힘 김형동 수석대변인은 전날 공식 논평에서 “관련 내용이 이미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이관된 부분이 있어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정보 공개가 안 되는 점은 유감”이라며 “대통령 지정기록물을 공개해 사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북한 눈치 보기가 자국민의 생명보다 우위에 두는 수준으로 전락했다”며 “국가 스스로 존재 이유와 존엄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제 누가 무슨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공무원의 죽음을 왜곡하고 유가족 명예를 훼손했는지 밝혀야 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해공무원 피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며 “사건 진상을 누가 왜곡했고 이로 인해 어떤 정치 이익을 얻으려 했는지 조사하겠다”고 소리 높였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해경이 정권 바뀌기 직전 저한테 양심선언을 했다”며 “수사하기 전에 이미 월북 결론이 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감청에 월북 내용이 있어서 월북이라는 큰 방향으로 수사 결론이 나 있었다”며 “나머지는 이걸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다 짜 맞춘 수사였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권 입맛 따라 왜곡...권력에 의한 음모론 기획한 것”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해경의 입장 번복이 윤석열 정권이 지시한 것 같다며 강력 반발했다.
민주당 국방위 소속 설훈 의원은 17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감청결과를 보면 누구든지 월북했을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며 “조사를 해보면 자세하게 알겠지만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다시 꺼낸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경의 입장 번복은 윤석열 정권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했을 것”이라며 “이미 당사자는 세상에 없는데 어떻게 감사를 하겠다는지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 윤건영 의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서 “해경을 포함한 우리 정부는 당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여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며 “보안이 생명인 안보 관련 정보가 정권 입맛에 따라 왜곡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국가적 자해 행위”라고 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이날 TBS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군의 여러 자료를 통해서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발표를 한 것”이라며 “국방위에서 여야가 근거 자료 열람도 했고, 열람 이후 야당 의원들이 아무 문제 제기를 안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경이 번복을 알아서 했을 리 없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해서 발표를 뒤집은 셈”이라며 “권력에 의해 음모론을 기획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족 “전 정권의 국정농단...文 전 대통령,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고발 예정”
해경의 결과 번복으로 피살 공무원의 아내와 유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2년 전 수사 결과에 대해 “당시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월북 프레임을 만들려고 조작된 수사를 한 것”이라며 “전 정권의 국정농단”이라고 비판했다.
유가족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고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이 피살 공무원 사건 보고를 받은 뒤 3시간이 지나 사망했다”며 “그 시간 동안 문 전 대통령이 무대응했으며 직무유기죄로, (사태를) 방치하도록 지시했으면 직권남용죄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자료 공개와 무관하게 공무집행방해죄 혐의로 고소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국방부와 해경이 월북을 하려다 피격당했다고 발표한 것이 서훈 전 안보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알아보겠다”며 “이를 위해 서 전 실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 이후 유족측 입장에 답변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사과를 이끌어냈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오 대변인은 쿠키뉴스의 질문에 “당 공식 입장은 말할 것이 없다”며 “우선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피격 사건이 발생했던 국민 희생이 있던 당시 우리 정부 차원에서 북한 당국에도 적극 항의했고 즉시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그 부분에 대해 사과 표명했고, 그런 사과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국민 희생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과 항의 표명, 사과 요구까지 국가가 국민의 희생 앞에 노력을 소홀히 한 적 없음을 재차 말한다”고 했다.
아울러 “당내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당내 입장이 정리되면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이승은 기자 selee2312@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