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일상을 괴롭히지만 국가예방접종 대상은 여성에 한정돼 있어 남성까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부인종양학회,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가 공동 주관한 ‘HPV 질환의 국가적 예방 필요성에 대한 국회 정책토론회’가 21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HPV는 여성의 자궁경부암 등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바이러스다. 남성에겐 생식기암, 두경부암을 일으키는 원인 인자이기도 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최소 50% 이상은 일생 중 어느 때라도 HPV에 감염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만12세 여아를 대상으로 HPV 예방백신 접종을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NIP)으로 도입했다. 지난해부턴 만 12~17세 여성청소년과 만 18~26세 저소득층 여성까지 지원 대상이 확대됐다. HPV 백신을 10대 초반에 접종하면 90% 이상 암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아는 무료 접종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주로 성관계로 감염되는 HPV를 완전히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HPV NIP를 시행 중인 110개국 중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을 포함한 52개국은 여아에서 남아까지 접종 대상을 확대했다”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기준으로 보면 GDP(국내총생산) 상위 10개국 중 7개 국가가 HPV NIP에 남자를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HPV 백신은 영국 GSK의 2가 백신 ‘서바릭스’, 한국MSD의 4가 백신 ‘가다실’과 9가 백신 ‘가다실9’ 등이다. 이 중 HPV NIP 대상인 백신은 2가와 4가 백신이며, 9가 백신은 포함되지 않는다. 백신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15세 미만은 2회 접종이 권장되며 15세 이상에선 3회 접종만 가능하다.
HPV 질환은 여성만의 질환이 아닌데도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아 남성의 백신 접종이 등한시되는 실정이다. 남녀 모두 접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방향으로 홍보돼 남성도 맞아야 하는 백신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며 “외국은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로 남성의 백신 접종을 유도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정부도 HPV에 의한 여러 질환의 문제를 경고하며 남녀 모두 접종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설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남녀 모두 HPV 백신 접종 시 여성 단독 접종 대비 70세 이후 HPV 16형 여성 유병률은 21%, 남성은 36% 감소했다”며 “남녀 접종을 통해 집단면역을 형성하고 남성이 여성에게 HPV를 전파하는 위험도 덜 수 있기 때문에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미래를 위해서 HPV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PV는 증상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예방 필요성이 더 강조된다. 민경진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국내 성생활을 하는 만 18~28세 남성의 HPV 감염률은 10.6%로, 생식기 사마귀 잠복기는 2~3개월에서 길게는 6~8개월”이라며 “현재 남성에게 권고되는 임상적 선별검사는 없는 상태라서 자신의 이상 여부를 파악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짚었다.
HPV NIP 대상에 남녀 모두를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비용효과성이 발목을 잡는다. 배상락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남성 HPV 백신 접종에 대한 필요성과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국내 남성 HPV에 대한 선행 연구가 부족하고 건강상 이점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다”며 “남성의 잠재적인 질병 위험과 여성에 미칠 위험률에 대한 반영이 부족한 만큼 관련 기초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남성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그 방안과 대상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생각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1회 접종으로 축소해 추가 비용 소요를 덜어 대상을 확대할지 아니면 관련 예산을 증액해 2회 접종을 유지하며 대상도 확대할지 방법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권근용 질병청 예방접종기획과 과장은 “HPV NIP 대상 확대 관건은 의학적 근거, 사회적 요구, 재정 확보 이 3가지로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HPV 백신 이외에도 다른 NIP 도입에 대한 요구도 있어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안은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질병청도 도입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결국 문제는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러 사안을 종합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HPV NIP 대상을 남아까지 확대하겠단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