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야당, 간호사와 비(非)간호사로 양분된 구도가 새 간호법안이 발의되며 다시 선명해진다. 지난 5월 기존 간호법 폐기 후 6개월 만이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기존 간호법 제정안을 수정해 재발의했다. 수정된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 7월27일 열린 민주당 정책의원총회에서 결정된 간호법 재추진 방침에 따른 후속 조치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 규정과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 4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등 보건의료계 직역단체들의 거센 반발 속에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이어졌다. 이후 5월 본회의에서 재표결을 진행했으나 재적 인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요건을 넘지 못하며 폐기됐다.
이에 고 의원은 반발에 부딪혔던 기존 법안 내용을 손질했다. 수정된 내용을 보면, 의협이 “간호사 단독 개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던 제1조의 ‘지역사회’ 문구를 ‘보건의료기관, 학교, 산업현장, 재가 및 각종 사회복지시설 등 간호 인력이 종사하는 다양한 영역’으로 바꿨다. 또 간호사의 권리에 ‘무면허 의료 행위 지시 거부권’을 명시해 관련 지시 거부에 대한 징계 등 부당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간무협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 차별”이라고 반발했던 ‘고등학교 학력’ 규정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 인정자’로 수정했다.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제한하고 있단 간무협 측의 반발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란 게 고 의원 측의 설명이다. 지역사회 돌봄사업 독점 등 불필요한 논쟁 고리도 끊겠단 의지를 담았다.
민주당은 기필코 간호법을 통과시키겠단 각오다. 이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날 홍익표 원내대표와 간호법을 대표발의한 고 의원을 비롯해 남인순, 서영석, 정춘숙, 김민석 의원 등 18명의 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간호법 제정에 힘을 싣겠다”고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는 축사를 통해 “대통령이 거부한 간호법을 다시 발의했다. 이번엔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고 의원도 “간호사들의 고귀한 뜻이 대통령 거부권으로 좌초됐지만 불씨를 다시 살려야 한다”며 “국회 복지위 여당 의원들과 논의해 간호법 제정을 관철시키겠다”고 피력했다. 김 의원은 “간호법 제정이 불발된 것은 간협이나 국회가 부족했던 탓이 아닌 윤 대통령의 잘못”이라며 “간호사의 행복이 곧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간호법 제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며 간호사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이날 김기현 대표는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녹여내 더 나은 환경에서 간호사들이 근무할 수 있도록 집권당에서 노력하겠다”며 “직역 간 이해관계 조정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간호사 여러분들의 마음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주호영 의원도 “모든 국민이 간호사들의 헌신과 기여를 잘 알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안다”며 “간호사들의 어려움과 문제들이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간호법을 대하는 여야 의원들의 온도차만큼이나 보건의료계 직역 간 반응도 극명히 엇갈린다. 신경림 간협 간호법제정특별위원장은 이날 기념대회에서 “간호법은 초고령 사회에 보편적 건강 보장을 위한 필수정책”이라며 “국민의 건강한 미래를 열기 위해 그리고 간호사와 간호대학생의 미래를 위해 간호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는 결코 다른 보건의료인들의 업무를 침해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으며, 지역사회 돌봄사업을 독점하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동료인 간호조무사, 간병사, 요양보호사 등 모든 간호돌봄 인력을 존중하고 처우 개선에 협력하겠다”고 했다.
의협 등 타 직역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의협, 간무협 등 14개 단체가 모인 14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안 재발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며 단체 투쟁에 나서겠단 의사를 밝혔다.
이들 단체는 “국민의 돌봄을 위한 법안이라던 간호법안의 실상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단순히 ‘간호사 특혜법’일뿐이었단 게 이미 증명돼 재론의 가치가 없다”면서 “간호사가 의사 지도 없이 단독 의료 행위를 할 수 있게 하는 ‘국민건강 위협법’이자 약소 직역의 업무를 침탈하고 일자리를 빼앗는 ‘약소직역 생계박탈법’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이 재발의 한 간호법안을 반대하며 이와 관련한 어떠한 협의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독단적으로 강행한다면 공동연대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로선 민주당과 간협의 바람대로 간호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1대 국회 임기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점도 간호법 통과의 중요 변수다. 무엇보다 간호법 제정 논의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는 의협의 강경 대응을 부추길 여지도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나서 의협은 대규모 총파업을 거론하며 맞섰다. 간호법 논의가 본격화되면 의협의 대정부 압박 수위가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간호법 재발의는 다분히 총선용의 정치적 추진이라고 본다”며 “의료계의 갈등을 촉발하는 시도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