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남편 좀 살려주세요.” 지난 1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혈액암의 일종인 ‘진성적혈구증가증’에 걸린 남편을 살릴 수 있는 치료제(베스레미·성분명 로페그인터페론 알파-2b)의 급여화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동의를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해당 글 작성자는 “제약회사가 치료제의 급여화를 진행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한 달에 400만원이라는 비싼 약제비를 감당할 수 없어 남편의 몸은 독한 항암제로 유약해졌다”며 “시댁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주사(치료제)를 쓰기 위해 집을 내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질병 진행에 따른 불안을 극복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며 “간절하고 절실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많은 암환자가 독한 항암제로 인해 몸이 망가지거나 치료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효과 좋은 치료제가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지 못해 비싼 주사 치료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 암환자들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표준치료 된 ‘면역항암제’…국내 사용 지지부진
2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면역항암제 도입 10년,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전문가들은 신약의 혜택에서 소외된 중증 암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면역항암제에 대한 급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했다.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는 몸속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전을 갖는다. 작용 기전에 따라 CTLA-4 억제제, PD-1 억제제, PD-L1 억제제로 분류된다. 기존 항암제에 비해 고가인 탓에 현재 국내에서 건강보험 급여로 지원되는 면역항암제는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등 6개 암종에 대한 7개 적응증에 불과하다. 최근 면역항암제들은 다양한 암종에서 임상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급여등재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건강보험 정책이 항암치료 시장의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최신 연구가 반영된 의학적 가이드라인에 맞춰 치료하는 선진국에선 훨씬 다양한 암종에 대한 면역항암제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국내에선 42개 비급여 적응증에 해당하는 암환자들이 전액 본인부담으로 면역항암제를 투약할지 고민하며 투병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역항암제의 효과는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라 교수에 따르면 비소세포폐암 면역항암제가 급여화 되기 전후 원격전이 환자의 생존율 변화를 비교한 결과 2016년 6.7%에 그쳤던 폐암 생존율이 2021년 12.1%로 두배가량 증가했다. 라 교수는 “위암, 신장암을 비롯해 다른 다양한 암종에서도 면역항암제는 뛰어난 생존율 개선을 보였고 이미 글로벌 표준 치료로 인정받고 있다”며 “대한민국은 의료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면역항암제 사용은 미국, 유럽 등 10개 선진국 중 최하위다. 적응증은 추가되고 있는데 아직 급여 적용이 안 돼 못 쓰는 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전이성 위암, 삼중음성 유방암 등 효과 있는 약제가 없는 암종들은 면역항암제의 급여 확대가 필수적”이라며 “한 약제에 여러 적응증이 추가된다는 이유로 꼭 필요한 치료제의 급여화가 늦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면역항암제 급여화를 바라는 환자들의 마음은 절박하다. 정승훈 면역항암환우회 홍보이사는 “그동안 건강보험은 누구나 의료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만들어왔지만 고가의 혁신신약이 나오면서 시스템의 사각이 드러나고 있다”며 “면역항암제를 비롯한 혁신신약의 적극적인 도입은 치료 기간의 단축과 더불어 빠른 일상 복귀를 돕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많은 환자가 정부와 제약기업을 믿고 기다리고 있다”면서 “눈앞의 이익이 아닌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면역항암제 등 혁신신약 접근성 강화 노력”
정부는 면역항암제 등 혁신신약의 환자 접근성을 강화하고 신속히 도입해 급여권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창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보장성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환자 접근성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급여권에 들어와 있지 않은 항암제 위주로 더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정해민 국민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장은 “건보공단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한 치료적·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에 대해 약가 예상 청구 금액 등 위험부담 협상을 거쳐 신속하게 급여화를 결정하고 있다”며 “생존을 위협하는 중증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선 신속 등재 제도와 허가평가협상 연계 제도 등을 통해 급여 등재 기간을 단축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가평가협상 연계 제도는 제약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신청하면 심평원 평가, 건보공단 협상을 나란히 병렬로 진행해 급여 등재 기간을 총 60일로 단축하는 방식이다.
제약업계의 뒷받침도 필요하다는 당부도 나왔다. 김국희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혁신신약의 조속한 급여화를 위해선 규제당국의 제도 검토와 더불어 제약업계에서 신약의 불확실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제출하고 사후에라도 비용효과성을 입증하는 노력 등이 함께 요구된다”며 “신약의 환자 접근성 향상을 위해 민·관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