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이들의 공백을 메우는 간호사들이 불법진료에 내몰리고 있다. 대리처방과 대리기록, 심지어 치료처치와 검사, 수술, 봉합까지 전공의들의 업무 대부분을 일반 간호사들이 떠맡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3일 오전 협회 서울연수원 강당에서 ‘의료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간협이 지난 20일 개설한 ‘의료공백 위기대응 현장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 이날 오전 9시까지 접수된 154건의 신고 내용을 공개했다.
신고된 의료기관을 종별로 보면 상급종합병원이 6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종합병원(36%), 병원(전문병원 포함, 2%) 순이다. 신고한 간호사는 일반 간호사가 72%,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24%였다.
가장 신고가 많은 사항은 ‘불법진료 행위지시’였다. 행위별로는 채혈과 동맥혈 채취, 혈액 배양검사, 검체 채취 등 검사와 심전도 검사, 잔뇨 초음파(RU sono) 등 치료·처치 및 검사, 수술보조 및 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비위관(L-tube) 삽입 등 튜브관리, 병동 내 교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처방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외래진료 조정과 수술 취소 전화 및 스케줄 조정 관련 전화 안내, 드레싱 준비, 세팅 및 보조,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만 응대, 교수 당직실 준비 등이 신고됐다.
특히 PA간호사의 경우 16시간 2교대 근무 행태에서 24시간 3교대 근무로 변경된 이후 평일 밤근무(오후 9시30분~오전 8시)로 인해 발생하는 나이트 오프(Night Off)는 개인 연차를 사용해 쉬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교수가 당직일 경우 처방 넣는 법을 모른다며 쉬는 날임에도 강제 출근 시킨 경우도 있었다.
PA간호사는 의사의 역할을 일부 대신해 수술, 검사, 응급상황 시 의사를 지원하는 인력이다. ‘수술실 간호사’ 혹은 ‘임상전담 간호사’로 불리며 전국에서 1만명 이상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하면 PA간호사를 적극 활용하겠단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환자 안전도 크게 위협받고 있었다. 의료공백 상황이 발생하면서 4일마다 하는 환자 소독 시행 주기가 7일로 늘어났고, 2일마다 시행하던 거즈 소독은 평일에만 시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현장 간호사들은 자신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가 없어 불법진료에 내몰리며 간호법이 필요하고, 전문 간호사에 대한 업무범위 인정과 전담간호사의 법적 안전망 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많은 간호사가 지금도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에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불법진료에 내몰리면서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를 단지 정부가 말하는 PA간호사들만이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의료현장의 모든 간호사가 겪고 있는 문제다”라며 “국민의 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의료현장을 지키겠단 간호사들을 더 이상 불법진료로 내모는 일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와 간협은 실무진 간담회를 개최하고 간호사 보호체계도 마련했다. 여기엔 긴급업무지침 발동, 의료사고 시 책임 경감, 의료공백 위기대응 간호사 수당(가칭) 도입, 간호사 업무범위 명확화 등이 담겼다. 긴급업무지침은 위임 불가한 의사 행위를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위임 가능한 업무 리스트는 정부가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정하게 된다.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은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에도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지 못해 간호사들이 고소·고발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위기 상황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가 더 이상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불안한 환경에서 일하지 않도록 상시적인 보호체계를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