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대도시 대형병원들의 의료공백을 메운다고 농어촌 지역의 공중보건의사(공보의)를 차출시켜 투입하자 지역의료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역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약속과 달리 오히려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에 대비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 20곳에 군의관 20명과 공보의 138명 등 총 158명을 한 달간 파견키로 했다. 다음주 중에는 군의관 50명, 공보의 150명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공보의는 군 복무를 대신해 36개월간 농어촌 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 국공립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하지만 인구 감소에 고령자가 대부분인 도서 산간 지역은 병원도 많지 않아 공보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이들을 대거 차출한다는 방침에 지역 공공의료기관은 혼란에 빠졌다. 강원도 지역 보건진료소장을 맡고 있는 A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대책 없이 사태가 이대로 장기화되면 결국 피해는 지역 주민들이 떠안게 돼있다”며 “안 그래도 강원 지역은 인구 고령화로 의료서비스 수요가 높은데, 한 명이라도 외부로 유출되면 공백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5일 지역 내 공보의 3명에 대해 상급종합병원에 파견 근무를 명령한 데 이어 이날 삼척과 고성, 정선 등 13개 시·군에서 공보의 14명을 추가 차출했다. 강원 지역은 전국에서 대표적인 ‘의료 취약지’로 꼽힌다. 복지부의 ‘2022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원주·춘천·강릉을 제외한 15개 시·군이 응급의료 취약지로 지정됐다. 응급의료 취약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에 1시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하거나, 지역응급의료센터에 30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한 인구가 30%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인제·정선·평창·화천 등 4개 지역은 분만의료가 가장 취약한 ‘A등급’으로 지정됐다.
A소장은 “코로나19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재난이었다고 쳐도 현 사태는 정부가 어느 정도 예상했을 텐데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데 대해 안타깝다”며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 지역 주민 피해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보건진료소 몇 군데 문 닫아도 지역의료는 잘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려가 크다”며 “정부는 시급히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지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취재를 종합하면, 충청남도 15개 시·군 지역 각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에 근무 중이던 공보의 17명이 차출됐다. 전라남도는 전날 공보의 23명을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배치했다.
인천시도 공보의 4명을 투입했다. 인천시 옹진군보건소 관계자는 “지역 의료공백이 없도록 하고 있지만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틀림없이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며 “위급한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은 없어야겠다”고 전했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파견된 공보의가 제 역할을 할지도 의문이다. 공보의는 의사면허를 딴 뒤 바로 군에 입대한 ‘일반의’인 만큼 특화된 전문 분야를 진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난 11일 정례브리핑에서 “전혀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던 공보의가 파견됐을 때 업무에 손발이 맞지 않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정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현장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격오지 주민들의 의료 문제 대안이 전혀 없다는 점”이라며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보다 수련병원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더 중요한가”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역의료에 최대한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에서 공보의를 차출했다며 지역 내 의료자원 연계 등 지자체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지역에 있던 공보의를 빼면 당연히 그쪽의 전력이 약화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단순히 인력을 빼왔다고 해서 당장 공백이 생기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상급종합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수술과 응급·중증 환자 치료는 시급성을 요구하는 것들”이라며 “인력을 우선 이쪽에 배치해서 환자들이 제때 진료 받을 수 있도록 한 방편으로 여겨달라”고 해명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