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계엄령 준비설 언급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해당 발언의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과거 보수 정부 시절 ‘계엄령’ 문건이 발견돼 논란이 된 적이 있는 만큼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라는 의견부터 서로에 대한 불신이 만든 일종의 ‘해프닝’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11년 만에 열린 여야 대표 회담 모두발언에서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통령실과 여당은 구체적인 근거를 대라고 압박하며, 그러지 못하면 ‘국기문란’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민주당은 ‘제보가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사실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 박근혜 정부 때의 ‘계엄령 문건’ 사건을 거론하며 윤석열 정부의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 기조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3일 민주당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당시 ‘계엄령’ 문건이 발견돼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작성한 문건에는 계엄 선포, 단계별 조치, 계엄 시행 준비 착수일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될 경우 군이 탱크 등을 동원해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를 진압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 및 구금하는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지난 2월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내란 예비 및 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당시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천준호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지난 2일 MBC 라디오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실제로 계엄에 대한 검토가 있었고 준비됐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지 않았나”라며 “지금 이 정권에서도 어딘가에선 그런 고민과 계획, 기획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은 정부의 일방통행식 행보가 계엄령 준비를 의심해 볼 충분한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계엄령 언급을 가장 먼저 꺼낸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1일 최고위에서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갑작스럽게 지명하고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이란 발언도 했다”며 “이런 흐름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주장했다.
또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중진의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이 상황을 끝내겠다’고 한 발언의 의미를 묻고 싶다”며 “과거 12·12 군사쿠데타를 경험한 그가 이번 상황을 ‘처음 본다’고 말하는 것은 현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극으로 내달리는 정치권에서 발생한 일종의 촌극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정부 여당과 범야권의 첨예한 대립 가운데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지면서 ‘계엄령’ 의혹이라는 다소 과한 해석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김상일 평론가는 “진영 논리가 커지고 극단화되다 보니 그 안에 플레이어인 정치인들도 자신과 다른 이들은 적으로 규정하고, 그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으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며 “이 대표의 ‘계엄령 의혹’뿐 아니라 윤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언급도 비슷한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계엄령 의혹에 대한 공세가 더 이상 진척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이날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당에서 당장 계엄을 할 거라고 보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제보가 있어서 지도부에서 언급한 정도”라며 “군불을 뗀 건 오히려 대통령실이기 때문에 우리 당이 이 문제를 두고 계속 공세를 하는 방향으로 가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공세용으로 계속 계엄령을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여론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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