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가정의 여름 전기 사용량이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올 여름 이례적인 폭염까지 겹쳐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최고 요금을 적용받는 가구가 지난 8월 기준 1000만가구를 넘어 가장 흔한 유형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히 다른 집보다 전기를 많이 쓰지 않는 평균 가정의 다수가 ‘전기 과소비’로 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최고 누진 구간에 해당되면서, 7년째 그대로인 누진 구간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한국전력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2512만가구 중 지난 8월 전기요금 최고 누진 구간인 3단계 가구는 1022만가구로 전체 가구의 약 40.5%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가장 싼 요금을 적용받는 1단계 가구는 895만가구, 중간인 2단계 가구는 604만가구였다.
올 여름 폭염 여파로 3단계 가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 844만명에서 약 21% 급증했다. 지난해 8월에는 가장 낮은 요금이 적용되는 1단계 가구가 전체 2521만 가구 중 993만가구로 가장 많았다. 2단계, 3단계 적용 대상은 각각 684만가구, 844만가구였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주택용만 적용된다. 여름철인 7∼8월 전기요금 누진제는 2018년 이후 7년째 동일 틀을 유지하고 있다. 7∼8월 주택용 전력 요금 체계는 ‘300kWh 이하(1kWh당 120원)’, ‘300kWh 초과 450kWh 이하(214.6원)’, ‘450kWh 초과(307.3원)’ 등 3단계로 구간을 나눠 위로 갈수록 요금이 무겁다.
기본요금도 300kWh 이하일 땐 910원으로 가장 낮지만, 300kWh를 넘으면 1600원으로 오른다. 450kWh를 초과하면 7300원이 적용된다. 즉 여름철 가정용 전기요금은 300kWh, 450kWh 선을 넘는지에 따라서 부담이 달라지는 구조다.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일부 가정에 경제적 불이익을 줘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경제력 향상에 따른 냉방 수요 증가, 전자제품 사용 확대 등 구조적인 경제·사회적 변화로 일반 가정의 전기 사용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기 사용량이 과거 ‘과소비 문턱’으로 여겨진 300kWh, 450kWh를 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한전의 통계에서 나타났듯이 이제는 ‘전기 과소비 가구’로 간주하는 450kWh 이상 전력 소비 가구가 흔한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 됐다.
또한 전기요금 누진제가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두 자녀를 낳는 등 가구원이 많아 가구당 전기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전기 이용자들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저출산 정책 관점에서 봤을 때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가령 8월 한 달 300kWh의 전기를 쓴 1인가구와 600kWh의 전기를 쓴 4인가구가 있다면 1인당 전기 사용량은 4인가구 쪽이 150Wh로 1인 가구의 절반에 그치는데도 오히려 비싼 전기요금을 적용받게 된다.
다만 한국의 전기요금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한다. 또 한국전력이 200조원이 넘는 부채로 심각한 재무위기에 놓여 전기요금 정상화 차원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그러나 이 같은 요금 정상화 노력과 별개로 일반 가정이 ‘전기 과소비자’로 규정 받아 불이익을 받는 현행 누진제의 존속이 필요한지, 존속한다면 합리적 적용 방법은 무엇인지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장철민 의원은 “에너지 절약도 중요하지만 누진제는 기후 위기와 생활 방식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기요금 누진제는 과소비를 막기 위한 징벌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최고 구간이 가장 보편적인 상황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