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오후 8시 남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한 한 사무실에서 A씨(38)가 여자친구 B씨(46)를 폭행해 의식불명에 빠지게 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당시 놀란 A씨는 곧바로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B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뇌사 판정을 받은 B씨는 지난 7일 숨을 거뒀다.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는 술 취한 20대 남성이 전 여자친구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여성은 치아 5개가 부러지는 등의 상해를 입었다. 남성은 인근에 세워둔 1톤 트럭을 운전해 도망가는 여성에게 돌진하기도 했다. 남성은 특수폭행 및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도 넘은 ‘데이트 폭력(dating abuse)’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바로 타인과 나의 ‘관계(relation)’를 판단하는 ‘인식(cognition)’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199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클라우스 피들러(Klaus Fiedler) 연구팀은 ‘가까운 관계에 있는 행위-관찰자 편견: 자기 지식과 자기 관련 언어의 역할(Actor-Observer Bias in Close Relationships: The Role of Self-Knowledge and Self-Related Language)’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친숙도(familiarity)’는 대인관계의 객관성을 깨트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두 명의 타인이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얼마나 친숙한가에 따라 각각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친한 사람의 행동은 추상적으로 해석한다. 즉, 누군가와 편한 사이가 되거나 연인사이가 되면 이전보다 상대방의 행동을 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 타인과 친밀한 관계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나 자신의 행동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퍼주며 헌신하는 어머니가 정작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경우가 있다.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 스스로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자녀가 어머니를 학대하는 경우에도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OO이는 원래 저런 아이가 아닙니다. 다 저의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데이트폭력은 사랑싸움이 아니다. 명백한 범죄다. 물론, 보복이 두려워 신고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연인 관계라 해도 상대방의 폭력성을 발견했다면, 냉정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폭력성은 대물림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가해자도 양육 과정에서 피해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은 스스로 날카로워지는 법을 모른다. 부모와 주변 환경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데이트폭력을 사랑싸움으로 치부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시급하다. 또 처벌 강화는 물론 피해자와 가해자를 위한 약물·심리치료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재연(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행복한 심리상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