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느끼던 두 마리의 고슴도치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다. 계속 가까이 다가가던 고슴도치들은 결국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고 만다. 하지만 서로 떨어져 있으면 온기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적정 거리를 놓고 고민한다. 이와 같이 자신에게 달린 가시들로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는 상태를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욕구를 가리키는 고슴도치 딜레마는 최근 건국절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에도 적용된다. 대한민국 건국시점을 두고 역사학계와 정치권이 가시를 드러내며 방어적 자세만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국절에 대한 갈등은 1919년 ‘임시정부설’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설’ 두 가지로 나뉜다. ‘1919년 건국절’ 찬성론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대한민국의 건국절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1948년 건국절’ 찬성론자들은 임시정부 시기 이후 광복까지의 시기를 건국이 아닌 독립운동이라고 봐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대표적인 ‘1919년 건국절’ 찬성론자인 한시준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민족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며 “역사학계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김영호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19년 건국론을 보면, 역사적 사실과 사료에 기초하기보다 역사가의 생각이 앞선다는 느낌이 강하다”면서 “역사적 사료와 역사가의 생각이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어떤 국가든 독립선언과 해방과의 시차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건국절을 어떤 기준으로 삼고 있을까. 미국의 경우 영국의 식민지 상태에 있던 13개의 주가 서로 모여 독립을 선언한 1776년 7월4일(독립기념일)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미국은 독립선언이 있은 후 약 8년간에 걸친 싸움 끝에 1783년 9월3일에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하게 된다.
또 독립선언서의 공포를 기념하는 미국뿐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독립기념일을 강조한다. 멕시코는 1810년 9월16일 미겔 이달고 신부가 주도한 ‘돌로레스의 함성’을 기념한다. 아시아의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역시 독립선언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다른 국가에서 건국절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없다는 점이다. 박구병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에서 ‘독립기념일이냐 건국절이냐’를 두고 크게 부딪히는 사례는 없다. 특히 미국에서도 건국절에 대한 논란은 있지도 않았다”면서 “건국절에 대한 논의 시도는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정치적 진영논리에 파묻힐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건국절 논란은 ‘보수와 진보’ 이념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며 상대 진영에 대한 방어 지향적 자세가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갈등 속에 국민적 공감대가 빠져 있다.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정치적 논리는 불필요한 논쟁과 상처를 남길 뿐이다. 독립을 선언 이후로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 건국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정치적 의도가 숨은 편 가르기를 끝내야 한다.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한 발짝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조미르 기자 m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