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의 일이다. J군은 그날따라 말이 없었다. 잔이 서너 번 오가는 동안에도 녀석은 묵묵부답이었다. 침묵이 깨진 건 녀석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여자 친구가 임신을 했었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려다 멈칫했다. ‘했어가 아니라 했었어?’ 나는 술을 마저 삼키고는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J군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다. 여자 친구를 원망했다가, 본인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며 애먼 내게 화를 내는가 하면 전부 본인 탓이라고 울기도 했다. 정리하면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본인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고 했음에도 여자 친구가 이를 거절해 결국 낙태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녀석은 연거푸 소주를 들이키다 결국 뻗어버렸다.
나는 J군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실제로 결혼할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다. 진심으로 사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 친구가 느꼈을 임신의 공포를 과연 J군은 알았을까. 그의 눈물에는 과연 한 여인의 공포와 두려움이 포함돼 있었을까. 그는 결코 몰랐을 것이다. 그 눈물의 실상이란 자기 위안과 변명, 그리고 일말의 죄책감을 떨치기 위한 것이었단 걸. 꽃병을 깨뜨린 아이가 지레 겁을 먹고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욕을 하거나 찔끔할 남성들이 적지 않으리라 본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이 문제의 원인은 남성들에게 있다. 한국의 남자 녀석들은 사랑과 섹스에 적극적이지만 피임에는 유독 소극적이라는거, '노'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말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수술대 의자와 수술 도구에 바로 전 사람이 수술할 때 묻은 것 같은 피가 보였습니다.(중략) 일반적인 의료과정이라면 당연히 의무적으로 알려줘야 할 부분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중략) 낙태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저에겐 임신을 중단할 권리만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할 기본적 권리도 없었습니다.”
지난 9월 28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한 임신중절 시술 사례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 임신중절 시술은 ‘불법’이다. 이 때문에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홀로 병원을 알아보고 수술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한 해 약 17만 건의 임신중절이 이처럼 이뤄진다고 추정한다. 미성년자 등의 사례를 고려하면 실제 건수는 이를 훨씬 상회하리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수술의 부작용이나 후유증에도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훗날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정치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중절 문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공론의 장에 오른 적이 없다. 그 모든 이유는 하나다. 임신중절 수술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낙태죄 폐지와 미프진 합법화 요구’ 제하의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조 수석의 발언 중에선 비교적 긍정적인 인식도 발견된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의 이분법 구도의 문제점 ▶현행법과 현실의 괴리 ▶현행법이 임신중절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점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등이 그것이다.
인식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대책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실제로 한국여성민우회는 청와대가 내놓은 임신중절 실태조사 및 전문 상담 등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우려했다. 당장 여성들은 안전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는 일조차 막막한 형편이라는 것이다.
임신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당혹과 공포일 수 있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뒷말하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는 혼전 임신의 책임을 항상 여성에게 돌려왔다. 예기치 않은 임신의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해결’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견고한 인식의 장벽 뒤에 우리 남성들은 그동안 숨어 있었다. 건강과대안의 박건 연구위원은 <여성신문> 기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여성의) 고통은 기록되지도 못했고, 사회적으로 드러나지도 못했다. 이제 임신중절은 더 이상 소외질병화돼 외면하고 회피할 문제가 아니다.”
사정 후 지퍼를 올리면 그것으로 섹스는 끝난 것인가. 아니다. (필자와 같은) 우리 남성들은 일단 닥치고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