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관악구 서림동과 대학동 일대. 노량진과 더불어 국가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일명 고시생들이 원주민보다 더 많이 사는 곳. 돈 푼으로 싼 밥과 술을 해결할 수 있는 곳. 트레이닝복을 입은 ‘청년’들이 두터운 패딩 점퍼에 몸을 감싸고 바삐 오가는 곳. 입춘을 지난 3월이어도 겨울의 흔적이 가득한 곳. 푸름보다 무채색 황량함이 더 진한 곳. 이곳은 내일만 사는 청춘의 늪, 녹두거리다.
2일 서울대학교 인근은 2킬로미터 떨어진 지하철역부터 붐볐다. 이날은 하필이면 입학식이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만면에 미소를 띤 부모나 신입생으로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는, 그러나 이날의 행사가 아니더라도 늘 길게 줄이 서있다. 서울대를 거쳐 녹두거리에 이르는 시내버스 5515번을 타려는 이들 때문이다. 승객은 서울대로 향하는 이들과 고시촌에 가는 이들로 나뉜다. 고시촌에 가는 승객은 고시생이거나 싼 자취방에 거주하는 노동자들로 다시 쪼개진다. 그래서 버스는 항상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서울대생이요? 여기 사는 학생은 0.1%도 안 될걸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노량진을 거쳤다 온 고시생이 태반이에요.” 운전기사가 무심하게 말했다.
녹두리아라 불리는 햄버거 매장을 발견하면, 당신은 녹두거리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매장를 끼고 돌면 눈앞에 주욱 이어지는 좁은 길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녹두거리의 시작이다. 밤이 되면 즐비한 식당과 술집, 부동산중개소와 노래방 따위가 내뿜은 빛의 소음은 상당하다.
여기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방을 구하려면 500만원은 있어야 한다. 3평 남짓의 방에는 작은 냉장고와 장롱. 세탁기 등이 ‘갖춰져’있다. ‘풀옵션 원룸’의 수준이다. 월세는 30만원. 보증금이 낮아질수록 프라이버시의 보장은 요원해진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5만원의 방은 세탁기와 화장실을 공용으로 써야한다.
더 싼 방도 있다. ‘잠방’으로 불리는 잠만 자는 방이다. 가구라고 해봤자 책상, 의사가 전부다. 1평도 안 되는 단칸방은 성인 남성이 똑바로 누울 수 없을 정도로 작다. 합판으로 덧대 옆방의 코고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나마도 지하인지 아닌지, 창문의 유무에 따라 매달 주인에게 내야하는 돈의 크기가 달라진다.
여기에 사는 이들은 ‘거주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전입신고를 하고 주민세를 납부하거나 4대보험이 보장되는 정규직 노동자는 거의 없다. 태반이 용돈을 받아 수험생활을 하는 고시생이거나 싼 방을 찾아 떠밀려 온 계약직 및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그동안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임시거주자’의 규모와 관련해 추계조차 이뤄진 적이 없었다. 지난해 관악구가 2만9363가구의 주거취약계층 조사가 이들에 대한 첫 조사였다.
지하방 2만847가구, 옥탑방 1284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된 상담에서 5394가구(18.3%)만이 설문에 참가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조사 대상의 절반 이상은 월세방에 세들어 살고 있었으며(56%). 단독가구는 57%, 생계·주거·환경개선을 요청한 경우는 42%에 달했다. 응답자 중 43%(기초생활보장가구 26%, 기초연금가구 17%)는 저소득층이었다. 해당 조사에 임시거주자들의 실상이 얼마만큼 반영됐는지도 알 수 없다.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도, 드러나지도 않는다.
녹두거리내 술집에는 늘 주객이 많다. 1만원이면 술과 안주가 나오는 탓에 싸게 취할 수 있다. 오늘의 고달픔이나 내일의 불안, 외로움은 알코올 몇 잔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지만, 잠시의 망각이라도 없다면 이들이 삶의 무게를 견딜 방법은 전혀 없다. 술집만큼 노래방과 PC방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술이나 게임, 노래를 즐기지 않는 이들은 1000원짜리 아메리카 한 잔을 시키면 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로 향한다. 그래서 녹두거리에는 카페도 많다.
각종 공무원 시험은 어림잡아도 100대1의 경쟁률을 보인다. 승자는 한 명뿐, 그가 떠난 자리는 금세 다른 이로 채워진다. 나머지 99%는 기약 없는 경쟁에 또다시 인생을 건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안정적인 직업은 곧 ‘공무원’이다. 이 선택에는 공포가 전제돼 있다. 청춘들에게 선택지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다. ‘공무원이 되어 승진시험을 준비하고 싶다.’ 매일 밤 녹두거리 한편에 편 술자리에선 이런 푸념이 빠지지 않는다.
기자는 ‘청년’을 파는 정치구호를 믿지 않는다. 당장 오늘이 고달픈 이곳의 청년들에게 정치란 멀리 있다. 수십 년 동안 밀려나 현재의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정치나 정책은 적어도 선거 유세 기간 외에는 없었다.
과거 녹두거리에서 유세에 나선 야당 후보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지지를 호소했다. 표를 주면 이곳을 바꾸겠다고, 먹고 살만하게 만들겠다고 열을 올렸다.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고도 했다. 멈춰 서서 여기에 귀를 기울인 이들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녹두거리를 채운 상당수의 임시거주자들에게 이곳에 어떤 정당과 정치인이 오는 지는 중요치 않다. ‘나는 이곳을 떠나고 말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과정일 뿐’ 이렇게 현재는 부정된다. 그 해 보궐선거에는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청년을 위한 정치가 있었다한들, 어떠한 효용이나 성공을 가져왔는지 평가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다. 때문에 정치에 무신경한 이곳의 청춘들을 힐난하고 꾸짖을 자격을 가진 정치인과 정당은, 없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