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정책서 의사협회 배제, 현실로

[기자수첩] 정부정책서 의사협회 배제, 현실로

기사승인 2018-04-28 01:00:00
보건의료정책에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의 암묵적 역할은 개원가 의사들의 뜻을 전하고 조율하는 일이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또한 제도나 정책을 책상에 앉아서만 만들어 시행할 경우 현장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임상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의협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의협과 정부간의 관계가 빠르게 냉각되는 분위기다. 심지어 정부와 의료계 간의 내밀한 논의가 필요한 보건의료 정책이나 제도 수립과정에서 의협이 배제되거나 무시되는 경우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현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의 경우 대립이 심화되며 대화가 단절되기도 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합의문은 폐기됐고, 비급여의 급여화를 위한 의정협의체 활동은 잠정 중단됐다.

최근 의협이 악화되는 여론과 정부의 강경대응에 추진해오던 제2차 전국의사총궐기대회와 집단휴진이 잠정 유보하며 ‘마지막 대화’를 요청해 다시금 대화의 물꼬를 여는 모습이지만 의협의 고자세에 정부는 여전히 불신의 눈초리로 살피고 있다.

단적인 예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의 행보다. 문재인 케어에 대한 반대와 투쟁의 전면에 섰던 최대집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투쟁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제40대 의사협회장에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 1달여간 박 장관은 최 당선인과 만나지 않고 있다.

반면, 지난 13일 정부의 의료계 또 다른 정책동반자이자 병원들을 대변하는 입장에 있는 대한병원협회 회장에 당선된 임영진 경희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과는 6일 만에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눴다.

심지어 박 장관은 임 당선인과 만난 다음날인 20일에는 대한의사협회 산하 단체인 대한의학회 장성구 회장과도 면담을 갖고 문재인 케어 추진을 위한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더구나 이번 만남을 복지부에서 먼저 제안한 점이나 장관과 의학회장의 만남이 이례적이라는 점 등에서 의협의 정책 동반자적 지위를 흔드는 사건이라는 분석들이 따르는 이유기도 하다.

게다가 현 정권과 맥을 같이 하는 여당의 반응 또한 정부의 의협을 향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22일 신임 의장을 비롯해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등이 선출되는 제70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의원들 총 4명만이 자리했다. 통상 의협이 가지는 의료계 내 영향력을 차치하더라도 지방선거 등 정치적 화제나 사건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의료계 단체들을 방문해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행동과 말을 남기는 것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대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 박능후 장관의 축사는 박 장관은커녕 차관도 아닌 국장급인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이 대독을 하며 대화와 협력을 당부하는 모습은 현 정권에서 의협의 위치가 그 정도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와 관련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협의 위상이 떨어질 때로 떨어졌다.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더 떨어질 곳이 있었던 것 같다”며 “이대로라면 의협의 정책적 지위는 무시되고, 존재 이유조차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와 위기감을 전하기도 했다.

의사협회는 분명 의사들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결성된 이익집단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조율하는 조정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의협은 협상이나 대화를 무기로 하는 조정자가 아닌 이익집단, 그 중에서도 극단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모습이 전부처럼 외부에 비춰진다.

한 의료계 관계자가 비단 한 사람이 아님을 직시하고 의협이 잃어버린 혹은 잃을 위기에 놓인 지위와 위상, 권위와 존재이유를 간과하지 않길 기대한다. 보건의료계, 더 나아가 환자의 안전과 생명, 건강이 탁상공론으로 망가지지 않도록 진정한 조정자로 돌아오길 바란다. 더 이상 의협이 제외되거나 무시되지 않길 희망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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