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 회장은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맏손자, 구자경 LG 명예회장(93세)의 4남2녀 중 첫째로 194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해 첫 근무를 시작했고 이후 영업, 심사, 수출, 기획 업무 등을 거치면서 20여 년간 차곡차곡 실무경험을 쌓았다.
구 회장은 1995년 2월 22일, 그의 나이 50세에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하며 LG의 제 3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LG’로 우뚝 세우고, ‘영속기업 LG’의 기반을 탄탄히 마련했다.
구 회장은 매출액을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 규모(1994년 말)에서 GS, LS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160조원 규모(2017년 말)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다섯 배 이상 성장시켰다. 이 가운데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110조원대로 열 배 이상 비약적으로 신장시켰다.
국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약 10만명에서 약 21만명으로 2배 가량 늘어났다. 이 중 약 8만여 명이 200여 개의 해외 현지 법인과 70여 개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구 회장은 LG 사업군을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으로 구축해 경쟁력을 높이며 LG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이끌었고, 국가 산업 경쟁력의 견인과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등 자동차부품,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한발 앞선 미래준비와 신사업 육성에 착수하면서 늘 더 나은 고객의 삶을 꿈꾸고 실천한 경영자였다.
특히‘영속기업 LG’의 해답은 R&D와 인재라는 신념과 의지로 서울 마곡지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 사이언스파크’를 완성시키는 등 아낌없는 투자와 육성에 열과 성을 기울였다.
또 ‘럭키금성’에서 ‘LG’로 CI 변경을 주도하며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다졌으며, 선진적 지배구조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로 국내 대기업 최초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결단하는 등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의 토대를 쌓았다.
한편,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함께 기억하자는 뜻으로 ‘LG 의인상’을 만들어 남다른 사회공헌 철학을 실천했다.
후대에게 의미 있는 자연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의지로 자신의 아호를 딴 수목원 화담(和談)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인간적으로는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약속한 것은 꼭 지키려 했고, 대기업 총수이지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인물로 평가 받았다.
이훈 기자 ho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