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LG유플러스와 CJ헬로간 기업결합 건과,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간 기업결합 건에 대해 ‘조건부 승인’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과거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 합병때와 달리 경쟁제한성이 낮은 만큼 가격인상 제한 등 조건을 부여해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8일 공정거래조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업결합 관련 브리핑 자리에서 “SK브로드밴드 및 LG유플러스의 SO와의 기업결합 건을 심사한 결과, 해당 기업결합을 승인하되 유료방송시장에서의 경쟁 제한 우려를 차단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정조치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두 개 기업결합 건에 공통적으로 ▲케이블TV 수신료의 물가상승률 초과 인상 금지 ▲8VSB 및 디지털 케이블TV간 채널격차 완화, 8VSB 케이블TV 포함 결합상품 출시방안 수립‧시행 ▲케이블TV의 전체 채널수 및 소비자선호채널 임의감축 금지 ▲저가형 상품으로의 전환, 계약 연장 거절 금지 및 고가형 방송상품으로의 전환 강요 금지 ▲ 모든 방송상품에 대한 정보 제공 및 디지털 전환 강요금지 등의 시정조치를 내렸다.
또한 공정위는 중소PP 프로그램사용료 및 홈쇼핑 송출수수료 거래실태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 향후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소관사항을 검토하도록 요청했다.
◆ 3년 전 유료방송 기업결합 불허했던 공정위, 판단 달라진 배경은?=지난 2016년 SK텔레콤은 CJ헬로(당시 CJ헬로비전) 인수를 시도했지만 공정위의 독과점이라는 판단으로 불허된 바 있다. 3년이 지난 현재 공정위의 판단이 ‘불허’에서 ‘승인’으로 바뀐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중심으로 변화된 시장 특성 때문이었다.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면서 독과점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선 ‘시장획정’을 해야한다. 시장획정 기준은 크게 지역시장과 상품시장으로 나뉘는데, 지역시장에선 과거 SK-CJ헬로비전 건과 이번 두 건의 기업결합이 그대로 유지됐다. 다만 상품 시장 부분에서 3년 전 SK와 CJ헬로를 같은 시장으로 보고 양사의 기업결합이 이뤄질 경우 상당 지역 경쟁제한성이 생겼던 반면, 이번엔 디지털 유료방송 시장과 8VBS 유료방송시장을 별개로 봤다.
최근 IPTV 가입자 수가 SO가입자 수를 넘어 최대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SO 내에서도 디지털 가입자 수가 아날로그 및 8VSB(아날로그방송 가입자가 셋톱박스 없이 디지털방송을 보는 방식) 가입자 수를 추월했다. 또 디지털 유료방송 상품이 제공하고 있는 VOD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공정위는 디지털 유료방송과 8VBS간 수요대체성 및 구매 전환 형태 등 고려했을 때 둘을 별개 시장으로 획정했다.
조 위원장은 “디지털 중심으로 시장이 변화되면서 디지털 가입자가 아날로그 및 8VBS 시장으로 가진 않을 것이라 생각해 두 개 시장을 별개로 봤다”며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근본적으로 시장이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 소비자 후생효과 기대하며 ‘교차판매금지’ 조건 삭제 =공정위가 제시한 조건은 예상에 비해 상당히 완화됐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대표적으로 심사과정 중 최대변수였던 ‘교차판매금지’ 조건이 삭제됐다. 교차판매금지는 유료방송의 기업결합이 이뤄져도 IPTV 판매망에서 케이블TV(SO) 상품을 팔지 못하고, SO망에서도 IPTV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공정위의 교차판매금지 취지는 통신사가 유료방송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통신사들이 IPTV와 케이블TV를 동시에 취급할 경우 소비자들이 IPTV로 편중돼 통신사들의 시장영향력이 지대해질 것이란 우려였다. 공정위가 막판까지 고심하다 이 조건을 삭제한 이유는 오히려 경제적인 관점에서 소비자들의 편익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소비자들이 통신사 유통망을 통해 SO 상품을 구할 수 있고, 통신사들이 결합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면 소비자 후생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은 “교차판매 금지를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소비자들이 통신사 매장에서 SO 상품을 사는 등 편리함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며 “경쟁제한성이 없다고 본 게 아니라,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채널 축소 금지 등 다른 시정조치를 통해 교차판매 금지를 대체 가능할 수 있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M&A 심사에 참여한 배영수 국장은 “방송통신 융합 대세가 강해졌고, 소비자 구매 패턴이 많이 변했고, 결합상품 구매가 많이 늘어나는 등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에 변화가 있는데 대부분 디지털상품이라 이 시장을 하나의 독립된 시장으로 봤다”며 “2016년 같은 경우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전체 유료방송 시장 획정을 했을 때 1위 지역 평균 점유율은 60%가 됐지만 올해 기준을 적용하면 46.1%로 결과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 LGU+, CJ헬로 ‘알뜰폰 부문’ 분리매각 없이 인수=3년 전 공정위는 알뜰폰 1위 CJ헬로를 가격경쟁과 혁신을 주도하는 ‘독행기업’으로 평가하며 SK텔레콤이 합병할 경우 도소매 시장에서 경쟁제한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 또한 당시 두 회사의 기업결합을 불허하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이통시장 1위 SK텔레콤에서 3위 LG유플러스로 CJ헬로 인수주체가 바뀌며 공정위 판단도 달라졌다. 공정위는 두 회사가 기업결합을 통회 증가되는 점유율 증가폭이 1.2%에 불과한 점, 결합 후 LG유플러스가 여전히 3위에 해당하는 점, CJ헬로가 현재 과거처럼 독행기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경쟁제한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조 위원장은 “최근 CJ헬로의 가입자수 및 점유율 감소 추세, 매출액 증가율 감소 추세 및 영업이익 적자, MVNO 시장 자체의 경쟁력 약화 추세 등을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 CJ헬로의 독행기업성이 크게 약화됐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기업결합에 대한 조건부 승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환경에서 기업들의 혁신경쟁을 촉진시킬 전망이다. 또 이에 대한 시정조치는 기업결합 이후 유료방송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선택권 제약이나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이번 정부 승인으로 인해 유료방송 시장에 지각변동이 생긴다. IPTV와 케이블 TV로 나뉘어 ‘1강 4중’체제였던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주도하는 통신 3강 체제로 재편될 전망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감안한 공정위의 전향적 판단을 존중하며, 과기부/방통위 인허가 승인 취득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법인은 IPTV와 케이블TV의 성장을 도모하고 PP 등 협력 기업과 상생함으로써 국내 미디어 생태계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LG유플러스는 “공정위 결정을 존중하며, 조치사항에 대해서는 충실히 이행해 나가겠다”며 “ 유료방송 시장은 물론 알뜰폰 시장에 대해 공정위가 판단한 바와 같이 경쟁이 활성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소비자 선택권 확대뿐만 아니라 투자 촉진 및 일자리 안정화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CJ헬로는 “공정위가 유료방송 시장재편에 공감해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된 것 같다”며 “특히 논란이 됐던 알뜰폰 분리매각에 있어 경쟁 제한성이 없다고 판단한 부분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안나 기자 la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