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급여화 시범사업, 범의약계가 막을 수 있나

첩약급여화 시범사업, 범의약계가 막을 수 있나

정부, 예정대로 10월 추진… 한의계 “의사 파업 후 내부 갈등 봉합 위한 주장일 뿐”

기사승인 2020-09-11 02:00:04
1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관에서 범의약계 단체들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오는 10월로 예정된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해 범의약계가 제동을 걸고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등 범의약계 단체와 원로들은 지난 7월17일 ‘첩약과학화촉구범의약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통과를 저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7월24일 건정심에서 통과됐고, 오는 10월 시범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임시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차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국제위원장은 “지난 4일 의·정 협상 결과 정부는 의료현안을 원점에서부터 의료계와 협의해 새롭게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건정심을 통과한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은 당시 심의 의결 안건이 아니었고 소위원회에서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약사회 등이 격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는 보고안건으로 상정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해당 시범사업도 의료계와 협의해 요양급여 대상 여부를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의 급여화를 위해선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 효과성 ▲비용 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사회적 편익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 위원장은 “해당 시범사업은 원재료 관리부터 조제 후 과정까지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한방 첩약은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비과학적 급여화 정책”이라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처방의 변경이나 수정이 즉시 이뤄지기 어렵고 표준화도 힘들다. 원료 의약품인 한약제를 임의 조제한 복합제제로 품질과 규격이 확립될 수 없으므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것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건상 전 대한의학회장은 정세균 국무총리의 말을 빌려 첩약 급여화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그는 “정 총리가 부동산 해법과 관련해 그린벨트는 한 번 풀면 영원히 복구 불능이라 밝혔다”며 “건강보험 정책도 마찬가지다. 약물이 효용성, 안전성, 비용 효과성을 무시한다면 근거기반의 건보정책 원칙을 무너뜨릴 것이다. 급여화에 앞서서 한방첩약의 안전성과 위험성을 평가할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는 10월 시행될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한 기준과 과정도 공개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이왕준 위원장은 “시범사업에 대해 전혀 제시되지 않고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관련 단체와도 공유하지 않고 있는데, 시범사업은 10월에 강행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는 저의와 배경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하는 것. 시범사업에 대한 프로세스가 이렇게 공개되지 않은 건 유래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는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은 국민 건강이 정치에 오염된 대표적 사례”라며 “국민을 실험 쥐 치급하는 것. 정책을 시행하고 막상 써보니 잘못됐다, 미안하다 하고 철회하는 건 보건 정책을 하는 사람들의 기본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범대위는 다음 주까지 시범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갖춰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가이드라인에 합당하지 않는다면 건정심에 재검토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투쟁이나 단체행동까지는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왕준 위원장은 “여론에 호소하고 홍보하겠다. 법률적 대응이나 정치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근거, 더 나아가 건보 급여화의 보편성에 대한 충분한 문제 제기를 절차적으로 해나가는 게 더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의계는 의사 파업 후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첩약 급여화에 딴지를 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경호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국민의 목숨을 상대로 파업해놓고 무슨 할 말이 있냐. 의사 파업 후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것 아니냐”며 “첩약 급여화를 결정한 건정심은 사회적 합의 기구 역할을 맡은 지 20년이 넘었고 의협, 병협 모두 참여하고 있다. 첩약급여화는 의사들의 직역과도 관계없는 이야기다. 건강보험이 의사들만의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도움 되고 의료혜택을 잘 받게 하기 위한 것. 남의 직역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10월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창준 복지부 한의학정책관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시행하면서 그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첩약 보험적용, 안전성, 유효성 등 여러 제기된 문제를 협의체에서 논의하면 될 것”이라며 “일본에서 1961년부터 치료용 첩약에 대해 보험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한약제제에 대해 생산부터 유통까지 다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선진적인 곳이 없다. 첩약 당사자가 아닌 의사가 왜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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