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당시 불타는 망루에서 울린 이 절규는 영역만 달랐지 현재도 여전한 것 같다. 말을 조금 바꿔 정신장애인을 넣어보면 어떨까. 그렇다. 여기 정신장애인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기간행물 등록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21일 기준 정기간행물로 등록된 국내 언론사는 총 1만8812개사에 달한다. 이 가운데 보건의료 및 복지 분야를 다루는 전문언론(보건의료 일반 전문지)의 비중은 적지 않다.
이들이 다루는 영역은 의사, 환자, 제약, 의료기기, 의료기관, 보건의료 정책 등으로, 우리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다만, ‘그들만의 리그’라는 태생적 한계와 그로인한 비판도 존재할 터. 보건의료 전문지와 별다른 교류가 있진 않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정신장애인 권익 옹호를 슬로건으로 지난 2018년 6월11일 창간한 <마인드포스트>의 경우는 여러 면에서 다른 궤적을 보이고 있다.
이 매체는 의제설정자(Agenda Settler)로써, 때로는 활동가적인 색채를 강하게 띤다. 객관과 전문가주의로 무장한 여느 보건의료 전문지와는 사뭇 다르다. 거칠지만 현실적이다. 때때로 주관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에게 이중적 차별을 겪는 정신장애인들. 그리고 그들의 스토리를 다루는 마인드포스트의 뉴스가 비록 저널리즘적 완성도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이들의 강점은 따로 있다. 리얼리즘이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에 위치한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에서 박종언(49) 편집국장을 만났다. 편집국이라 봤자 두 세평 남짓한 오피스텔 방 한 칸. 푸른색 철문에는 그 흔한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은 세상
“이사를 하는 중이라 썰렁해요.” 박종언 국장이 방금 탄 커피를 건네며 민망한 듯 말했다. 기자는 그와 정신장애인 관련 토론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박종언 기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했다. 이십대 후반 브라질 유학 현지의 불안한 정세를 목도한 이후 박 기자는 정신장애인으로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는 삼십대와 사십대를 엉망진창으로 보냈다고 했다.
그날의 만남은 그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박 국장은 기자가 왜 정신장애인에 관심을 갖는지 궁금해 했고, 기자는 마인드포스트라는 언론에 대해 알고 싶었다.
- ‘마인드포스트’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뷰티풀마인드’로 지으려니 발음이 어려워서 뷰티풀마인드와 워싱턴포스트를 합쳐 마인드포스트로 지었어요. ‘마음을 담는 우체국’이라는 뜻으로요.”
- 창간을 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고요?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신문을 창간하고 싶은데 당신 기자생활을 하지 않았느냐. 한번 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창간 준비 자금이 없어서 2년가량을 고생하던 차에 한 독지가가 기자들의 월급과 운영비용을 쾌척했어요. 2년 정도 도움을 받다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했습니다. 조합원은 저를 포함해서 5명이고요. 저는 대표이사겸 편집국장을 맡고 있죠. 처음에는 상근기자 3명, 시민기자 4~5명이 활동했지만 현재 기자인력은 2명이에요.”
- 그러면 편집국장의 한 달 월급은 얼마입니까?
“50만 원입니다.”
- 너무 적네요.
“월세 40만원과 인건비, 각종 고정비용으로 한 달에 300~400만원을 지출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서울시 사업에 선정돼 정신장애인 법률소송 조언이나 언론모니터링, 정신장애인 문예대전 같은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 사업 예산은 사업비로만 사용해야 하잖아요? 일은 늘어나는데 인건비는 못 쓰는 상황이었겠군요.
“그렇죠. 어려웠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인드포스트가 말하려는 건 뭐죠?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
-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
“정신장애인은 정신질환 진단명 밖의 삶을 이야기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차별받는 정신장애인의 삶, 정신장애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날 것 그대로 전하자고 말이죠.”
(현행 28개의 법조항이 정신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 마인드포스트의 독자는 누구죠?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의료전문가가 주된 독자층이에요.”
(이 부분에서 타 보건의료 전문지가 떠올렸다. 그들과 마인드포스트의 독자층은 동일함에도 왜 마인드포스트의 상황은 왜 열악한 걸까. 짐작이 된다. 광고와 협찬을 끌어올 소위 ‘돈’되는 기사가 마인드포스트에는 없는 탓이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의료계와 사실상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당사자, 가족단체 사이의 해묵은 감정도 중간에서 조절해야 했죠. 우여곡절을 거쳐 우리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니다. 고작 창간한지 2년 8개월 만에 정신장애인을 다루는 기사들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있죠.”
- 언론모니터링 이야기를 해보죠. 일선 매체에서 정신장애인을 다룬 자사 기사를 선뜻 수정을 하던가요?
(사건·사고 기사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보도에 대해 정신장애계에서는 언론의 자성을 요구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한 ‘정신장애인 보도준칙’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을 다루는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모니터링 중이라고 했다.)
“기사에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되면,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권고문을 보냅니다. 50개의 편지를 쓰면 2~3곳에서 연락이 오죠. 자신이 왜 기사를 수정해야 하느냐고 항의하거나 순순히 사과하고 수정하기도 합니다.”
- 마인드포스트는 저널리즘과 액티비즘(activism,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실천주의) 중에 어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나요?
“저항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역할은 정신장애인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노인들이 더 이상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되는,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세상이 오는데 일조하는 것이죠.”
어쩌면 마지노선
기자는 정신장애인을 인터뷰할 때마다 한 달에 얼마를 버느냐고 묻는다. 매번 질문을 던질 때마다 민망하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모두 궁색해진다. 그러나 이 질문을 되풀이하는 이유가 있다. 정신장애인의 현실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났던 여러 정신장애인들은 앞서 박종언 기자와 같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번다.
기자가 정신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해 4년 넘게 매달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 인권을 논하는 자리에 갈 때마다 법이 강제한 이들의 처우와 권익은 반인권적이고 이러한 편견과 차별을 멈춰야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지만, 개선은 더디다. 더욱이 답답한 것은 보건복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조차 정신장애인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마인드포스트는 어쩌면 정신장애인 권익 보호의 마지노선이다. 그래서 이들의 기사에는 분노가 배여 있다. 법과 제도가 사회적 약자의 마지노선이 되어야 한다는 상식.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상식. 그러나 이 상식이 현실이 아니라서, 법과 제도가 발목을 잡는 역설이 우리의 현실이므로. 마인드포스트의 뉴스에 분노가 섞여 있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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