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호가 써간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나 다름없었다.
김은중 감독이 이끄는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은 9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 라플라타의 라플라 스타디움에서 ‘2023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이탈리아와 4강전을 1대 2로 패배했다. 2019년 대회에 이어 2연속 결승 진출을 노리던 한국 U-20 대표팀은 아쉽게 코앞에서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이렇게 선전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번 U-20 대표팀을 향한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2017년 한국 대회 이승우(수원FC), 2019년 폴란드 대회 이강인(마요르카)과 같은 특출난 스타급 선수가 없다 보니 주위 관심도 덜 했다. 심지어 구성 선수 대부분이 소속팀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경기 체력과 경기 감각이 우려됐다. 김 감독도 1차 목표를 16강 진출로 잡았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고 기대 이상의 여정이 펼쳐졌다. 대회 첫 경기인 프랑스와 평가전에서 2대 1로 승리를 거둔 뒤 온두라스와 감비아와 무승부를 거뒀다. 조별리그에서 1승 2무를 거둬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토너먼트 무대로 접어든 뒤에는 16강전에서 에콰도르를, 8강에서 나이지리아를 차례로 꺾고 준결승 무대를 밟았다.
대회 내내 한국은 석연찮은 판정에 시달렸지만, 김 감독의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은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도 효과를 봤다. 여기에 선수들의 조직력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탄탄해졌다.
대회를 통해 선수들의 가치도 크게 올랐다.
이번 대표팀의 주장 이승원(강원FC)은 6경기를 치러 2골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탈리아와 4강전에서는 전반 22분 페널티킥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이승원이 올린 기록은 기록은 직전인 2019년 폴란드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이강인이 올린 공격포인트와 같다.
이승원은 정교한 킥 능력으로 김은중호의 세트피스 전담 키커로 활약했다. 프랑스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2대 1 승)에서 1골 1도움을 올린 이승원은 온두라스와 조별리그 2차전과 에콰도르와 16강,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 연이어 도움을 작성하기도 했다.
프로팀의 유일한 주전 선수였던 배준호(대전 하나시티즌)은 이번 대회에서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대회를 앞두고 허벅지 내전근 부상을 입었던 그는 조별리그에선 별 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에콰도르와 16강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페널티킥을 얻어내기도 했다.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개인기를 통해 상대 선수들을 제치는 장면을 수차레 연출했다. FIFA도 그의 활약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센터백이지만 신장이 178㎝ 밖에 되지 않는 대학선수 최석현(단국대)는 에콰도르와 나이지리아전에서 연속으로 헤더골을 넣어 반전미를 선보였다. 최석현과 호흡을 맞춘 김지수(성남FC)는 탄탄한 수비력과 라인 조율로 해외 구단들의 러브콜을 받는 이유를 증명했다. 이외에도 공격수 이영준과 골키퍼 김준홍(이상 김천 상무)도 제 역할을 완벽히 펼치며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골짜기 세대라는 오명을 씻고 기적을 써간 한국은 3·4위 결정전으로 내려가게 됐다. 오는 12일 이스라엘과 같은 장소에서 격돌한다. 이스라엘은 우루과이에 0대 1로 패배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