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전국 2500개 우체국을 은행 영업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취약계층 금융 접근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은행대리업 도입을 전향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대리업 필요성에 공감하고,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지방의 은행 점포들이 사라져 금융 접근성이 낮아진다는 지적이 많았고, 이에 국회와 국민통합위원회에서 은행대리업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체국을 활용하자는 제안을 검토해 보겠다면서도, 예·적금 뿐만 아니라 대출 업무까지 위탁하는 것은 은행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은행 영업점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금융업 디지털화로 은행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줄었다. 또 은행들은 운영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영업점을 통폐합 중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과 지방은행, 저축은행 점포 수는 2020년 4488곳에서 올해 8월 기준 3837곳으로 651곳 줄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은 각각 255곳, 117곳이 감소했다. 비수도권 가운데서는 대구(55곳), 부산(48곳), 경남(32곳), 경북(23곳), 인천(20곳), 전남(18곳) 순으로 은행 점포가 줄었다.
은행 영업점의 빈자리를 우체국이 대신하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지난 7월 우체국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금융 사각지대를 해소하자고 제안했다. 우체국은 전국 2500개 점포망을 보유 중이다. 국민통합위는 입출금, 잔액 조회 등 단순 업무 뿐 아니라 예금 가입 등 다양한 은행 업무가 가능한 시스템을 우체국에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체국에 은행 업무를 위탁하기 위해서는 은행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은행법에서는 금융업의 본질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외부위탁을 금지하고 있다. 은행의 본질적 업무는 △예적금의 수입 또는 유가증권, 그밖의 채무증서 발행과 그에 따른 계좌 개설·해지 및 입금·지급 업무 △자금의 대출 또는 어음의 할인 업무 △내국환 외국환 △채무 보증 또는 어음의 인수를 말한다.
우체국 은행 업무 위탁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해외 사례도 있다. 1995년 이후 15년간 은행 점포 수를 35% 감축한 일본은 지난 2002년 은행대리업을 도입했다. 유초은행이 약 3000개의 우체국을 대리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출상품 취급은 우체국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우체국금융개발원은 지난해 낸 보고서를 통해, 우체국의 인프라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종합 고려할 때 은행 대리업자로 우체국 적합성은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그동안 은행 대리업 제도 도입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로 은행 대리업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내부통제 체제를 갖춘 은행권에서도 최근 횡령이나 실명법 위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등의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연내 은행대리업 도입을 위한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국민통합위원회에 참여한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들이 오프라인 영업을 줄이면서 시니어 고객, 외국인, 취약차주 등이 금융거래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포용금융 차원에서도 우체국 은행 업무 위탁은 필요하다”면서 “당국에서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안전 상품 위주로 우체국에서 취급하도록 하는 등 방지책을 마련하면 된다. 우체국을 이용한 은행 업무 대리로 서민금융이 상당히 개선된 일본의 사례처럼, 당국도 너무 보수적으로만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