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양해를” 셔터 내린 기업은행…행원들은 거리로 [가봤더니]

“파업 양해를” 셔터 내린 기업은행…행원들은 거리로 [가봤더니]

기업은행, 1961년 설립 후 첫 단독 총파업
문은 열었지만…영업점 업무 차질
노조 “차별임금·체불임금”
2, 3차 총파업도 예고

기사승인 2024-12-28 06:10:05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기업은행 한 지점이 27일 오후 셧터를 반쯤 내린 모습. 사진=정진용 기자

“죄송하지만 월요일에 다시 방문해 주십시오”

국책은행 IBK기업은행 노조가 사상 첫 단독 총파업을 단행했다. 절반이 넘는 직원들이 길거리로 나서며 일선 현장에서는 업무에 차질이 빚어졌다. 영업점을 찾았다가 허탕을 친 일부 고객도 있었다.

기업은행 임단투(임금·단체협약에 관한 투쟁) 비대위원회는 27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사상 첫 단독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날 파업에는 휴가자 등을 제외한 조합원 85%에 달하는 7000여명이 참여했다. 제주, 여수, 포항 등 지방 조합원들도 단체 상경했다. 참가자들은 금융위원회가 위치한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까지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전국 기업은행 모든 지점이 문은 열었지만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팀장 1년차 이하 직급은 모두 노조에 가입돼 있는 상황이다. 지점 직원뿐만 아니라 본점 직원들도 이번 파업에 동참했다. 이날 기업은행 지점 업무는 지점장 등 비노조원과 본사 파견 인력으로 운영됐다. 지점 유리 출입문에는 ‘기업은행 최초 단독 총파업’ 포스터와 함께 안내문이 여러 장이 곳곳에 붙었다. 안내문에는 ‘업무처리 시간이 지연되거나 일부 업무가 제한될 수 있다. 양해 부탁드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27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기업은행 당산동지점 출입문에 파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김동운 기자

청원경찰 “단순 업무만 가능” 안내…‘급한 업무’ 설명에 창구에서 처리도

일부 영업점에서는 파업 안내문을 붙인 안내판을 지점 한가운데 세워놨다. 어떤 지점은 아예 셔터를 반쯤 내려 뒀다. 평소 같으면 붐빌 평일 점심시간이었지만 영업점 내부는 한산했다. 창구는 ‘부재중’ 푯말만 덩그러니 세워진 채 비워져 있었다. 창구 직원들은 찾아볼 수 없고, 청원경찰과 직원 한 두명이 간간히 보이는 수준이었다. 

주요 업무지구 중 하나인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한 기업은행 지점을 찾아 ‘카드를 개설하고 싶다’고 말하자 청원경찰은 “오늘은 비밀번호 변경 등 간단한 업무만 처리 가능하다. 이외 업무는 월요일에 다시 찾아달라”고 안내했다.

파업으로 소비자도 불편을 겪었다. 한 50대 여성은 “추위를 뚫고 일부러 은행을 찾았는데 영업을 안하는 줄 몰랐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영등포구 한 지점 앞에서 만난 김난이(70대·여)씨는 적금이 만기가 됐으니 방문해 달라는 문자를 받고 영업점에 왔지만 헛걸음했다. 김씨는 “요즘 같은 시국에 파업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일부 지점은 개인고객 서비스를 중단하는 대신 기업금융 서비스는 제공하거나, 급한 업무를 선별해 처리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영등포구 한 지점에서 만난 창구 직원은 “기업금융의 경우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긴급 업무가 있을 수 있어 일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모(44·여)씨는 “급한 일이라고 했더니 다행히 창구에서 처리를 해주셨다”면서 “업무에 지장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려 파업 안내문을 지난 20일 영업점에 발송·부착했다고 밝혔지만 다수 고객은 파업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작구 한 지점 앞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ATM기에서 단순 업무를 처리했다며 “파업 하는 줄 몰랐다. 알았다면 안 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로 행진하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

“은행은 바보, 허수아비인가” 거리 나선 은행원들

기업은행 노조가 총파업을 단행한 것은 1973년 노조 설립 이래 최초다. 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이유는 기업은행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돼있어 시중은행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도 임금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기업은행 근로자 평균임금은 8500만원으로 국민은행(1억2000만원), 하나은행(1억1900만원) 등 시중은행보다 약 3000만원 이상 적다. 정부의 공공기관 총액인건비 제도 때문에 시간 외 임금도 직원 1인당 약 600만원이 미지급된 상황이다.

직원 불만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기업은행 노조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이직률은 2019년 0.9%에서 2023년 5.5%로 5배 넘게 증가했다. 신입공채 경쟁률도 반토막 났다. 2019년에는 93:1 였지만 지난해 47:1로 집계됐다.

반면 노동강도는 시중은행보다 높다. 지난해 주요은행 지원 생산성을 살펴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평균은 3억3300만원, 기업은행은 4억500만원에 달했다. 기업은행은 퇴직금, 인건비 등도 모두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노조는 헌법상 권리인 단체교섭권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총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집회에서 김형선 기업은행지부 위원장(현 금융노조 위원장)은 “평범한 은행원을 꿈꿨던 우리가 빨간 머리띠를 묶고 정부에 저항하는 투사가 된 이유는 기재부와 금융위 탓”이라며 “은행 경영진은 정부 뒤에 숨어 바보인 척 허수아비인 척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노조는 이익배분제를 도입해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고 1인당 600만원, 총 780억원 규모로 쌓여있는 시간외수당을 전액 현금 지급하라는 입장이다. 이번 총파업에도 진전이 없다면 2차, 3차 총파업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아울러 기업은행지부를 필두로 내년 상반기에 공공기관의 전면 총파업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도 예고했다.
정진용 기자, 김동운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김동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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