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 밤 10시. 다음 날 출근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다. 넷플릭스를 켤까, 맥주를 딸지 고민하던 찰나, 카톡이 울린다. “뭐해?” 보낸 이는 회사 선배. 퇴근한 지 한참 된 시간, 특별한 이유 없는 메시지에 답해야 하나 망설이던 중 또 한 번 울린다. “자니?”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을 정하고 있다. 이 범위 내에서 사용자와 근로자가 약정한 시간을 ‘소정근로시간’이라 하며, 이 시간 외에 이루어지는 노동은 연장근로로 분류되어 별도의 수당이 지급된다.
법이 정한 근로 시간이 끝났다면, 그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업무용 단톡방에 퇴근 후에도 업계 동향이라는 이름의 파일이 공유되고, 그 알림은 ‘휴식’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 알람을 꺼보라지만, “1”이라는 숫자가 눈에 밟혀 결국 확인하고 만다. 몸은 퇴근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회사와 연결된 채다.
이처럼 근로 시간 외에도 디지털 기기를 통해 계속해서 회사와 연결되는 현실을 방지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다. 프랑스는 2017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이 권리를 명시했으며,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등도 법령 또는 가이드라인 수준에서 이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회사와의 연결을 끊고, 시민으로서, 가족으로서, 나로서의 시간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권리는 단지 기술적 연결을 끊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독립을 보장하는 조직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조직에서는 이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도 조직문화는 위로부터 만들어지는 탑다운 구조 속에 놓여 있다. 결국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실현되려면, 위에서 먼저 끊어줘야 한다.
요즘 세대는 조직 외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하지만 그들은 조직문화를 바꾸는 권한을 가진 세대는 아니다. 퇴근 후엔 메시지를 삼가고, 자료는 다음 날 업무 시간에 공유하는 습관. 회식은 자율적으로, 주말 약속은 배려하는 분위기. 이런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들이 반복될 때, 조직문화는 비로소 바뀐다.
소정근로시간을 온전히 지켜주는 것.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근무 외 시간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단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괴롭힘과 성희롱을 예방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존중받는 조직의 시작이다.
글·박정연 노무사
노무법인 마로 공인노무사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 H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