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일 (4)
[쿠키과학]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 기존 핵반응 이론 한계 검증한 첫 물리 논문 발표

[쿠키과학]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 기존 핵반응 이론 한계 검증한 첫 물리 논문 발표

저에너지 영역 핵반응 모델 오류 확인
독자 가속기 시설로 실제 물리 데이터 생산 쾌거
아르곤-40 빔과 양성자 충돌 실험, 저에너지 탄성산란 데이터 정밀 측정
측정 어려운 불안정 희귀핵 연구 신뢰도 높일 핵심 기준점 마련

승인 2026-06-24 10: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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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 핵물리 실험 장치(KoBRA 스펙트로미터). IBS
다목적 핵물리 실험 장치(KoBRA 스펙트로미터). IBS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RAON(라온)이 첫 물리 논문을 내며 본격적인 과학 성과 창출 단계에 들어섰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RAON을 활용해 기존 핵반응 이론의 한계를 실험으로 확인하는 데 성공, 이를 국제학술지 논문으로 발표했다고 24일 밝혔다.

IBS 한인식 희귀핵연구단장팀은 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IRIS)와 공동연구로 아르곤-40과 양성자의 저에너지 탄성산란 데이터를 측정하고 기존 핵반응 모델이 이 영역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RAON에서 생산한 빔으로 수행한 첫 물리 연구 성과이자, 2023년 빔 인출 성공과 2024년 시범운영 이후 처음 국제학술지 논문으로 이어진 사례다.

연구 결과는 물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Results in Physics’에 8일 게재됐다.

이번 성과는 국내 연구진이 독자 구축한 대형 가속기 시설이 실제 물리 데이터를 생산하고, 기존 이론의 한계를 검증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는 점에서 RAON 연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로 평가된다.

핵물리학자들은 별 내부에서 원소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희귀핵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원자핵끼리 충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한다.

이 연구의 기본 도구가 ‘광학모형’이다.

광학모형은 핵과 핵이 충돌할 때 입자가 어느 방향으로 튕겨 나가고 얼마나 흡수되는지 계산하는 이론이다.

마치 빛이 렌즈를 통과하며 굴절되는 현상을 계산하듯 핵반응도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광학퍼텐셜이 대부분 높은 에너지 영역의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데이터가 부족한 저에너지 영역에서는 이론의 정확성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


하전입자 측정 실험장치(ELARK 실리콘 배열 검출기). IBS
하전입자 측정 실험장치(ELARK 실리콘 배열 검출기). IBS

IBS 연구팀은 ‘쿨롱 장벽(Coulomb Barrier)’ 에 주목했다.

쿨롱 장벽은 양전하를 띤 두 원자핵이 서로 가까워질 때 발생하는 전기적 반발 장벽이다.

핵반응은 이 장벽을 넘거나 통과해야 일어난다.

따라서 쿨롱 장벽 근처는 핵반응이 시작되는 경계 구간으로, 핵반응 이론을 검증하기에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이 구간은 실험 자체가 쉽지 않아 데이터가 거의 없었다.

연구팀은 RAON에서 가속한 아르곤-40 빔을 이용해 이 문제에 도전했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가 운영하는 다목적 핵물리 실험장치 ‘KoBRA’는 가속된 이온빔을 실험 표적까지 정밀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연구팀은 KoBRA를 이용해 아르곤-40 빔을 수소가 포함된 표적으로 안정적으로 보내고, 에너지를 4.4·5.9·8.3 MeV/u 수준으로 조절해 실험을 수행했다.

아르곤-40 핵이 수소 원자핵인 양성자와 충돌하면 양성자는 다양한 방향으로 튕겨 나온다.


아르곤-40 빔과 양성자가 만나서 탄성 충돌을 일으키는 과정. IBS
아르곤-40 빔과 양성자가 만나서 탄성 충돌을 일으키는 과정. IBS
아르곤-40 + p 탄성산란 실험 결과와 기존 핵반응 모델 비교. IBS
아르곤-40 + p 탄성산란 실험 결과와 기존 핵반응 모델 비교. IBS
연구팀은 희귀핵연구단이 자체 개발한 ELARK 실리콘 검출기 배열을 활용해 산란된 양성자의 각도와 에너지를 정밀 측정했다.

ELARK는 표적을 둘러싸는 형태로 설치돼 양성자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갖고 나오는지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렇게 얻은 탄성산란 데이터를 기존 핵반응 모델과 비교했다.

탄성산란은 당구공 두 개가 부딪힌 뒤 모양은 그대로 유지한 채 방향만 바뀌는 현상처럼 충돌 전후 원자핵의 내부 상태는 변하지 않고 운동 방향만 달라지는 상태다.

현재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KD 광학퍼텐셜과 PP 광학퍼텐셜은 4.4 MeV와 5.9 MeV의 저에너지 구간에서 계산 결과와 실험 데이터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어 측정값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반면 연구팀이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롭게 도출한 국소 광학퍼텐셜은 측정된 산란 분포를 정확하게 재현했다.

이는 기존 이론이 저에너지 영역에서는 수정이 필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번 데이터는 향후 희귀핵 연구의 핵심 기준점 역할을 할 전망이다.

희귀핵 연구는 실험이 어려운 불안정 핵종을 다루기 때문에 직접 측정할 수 없는 반응을 이론 모델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광학모형의 정확도가 전체 연구 결과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이번 연구는 RAON이 생산한 실제 데이터를 통해 기존 핵반응 모델의 한계를 확인하고 새로운 모델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희귀동위원소 빔 실험과 핵천체물리 연구, 별 내부 원소 생성 과정 연구에도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전망이다.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인 IBS 희귀핵연구단 안성훈 연구위원은 “RAON에서 얻은 핵물리 실험 데이터가 처음 논문 성과로 도출했다"며 ”확보한 데이터는 향후 저에너지 핵반응 연구와 희귀핵 구조 연구, 핵천체물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면 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장 직무대행은 “RAON의 빔 운전 기술과 실험장치 인프라, 희귀핵연구단의 검출기 개발 및 데이터 분석 역량이 결합해 만든 첫 물리 논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석복 IBS 원장은 “RAON이 이제 본격적으로 과학적 성과를 생산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며 ”이번 성과가 RAON 기반 희귀핵 연구 확대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IBS 희귀핵연구단 김다히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조교수가 제1저자로 참여했고, 안성훈 IBS 희귀핵연구단 연구위원이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결과는 지난 8일 국제학술지 ‘Results in Physics’에 게재됐다.
(논문명: 40Ar+p Elastic Scattering Measurement at Energies near the Coulomb Barrier for Optical Potential Study)


이재형 기자 jh@kukinews.com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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