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이봉원이 밝히는 ‘아내’ 박미선 VS ‘동료’ 박미선

[쿠키人터뷰] 이봉원이 밝히는 ‘아내’ 박미선 VS ‘동료’ 박미선

기사승인 2009-02-11 19:08:01

"[쿠키 연예] 쿠키 연예팀에서는 매주 수요일 드라마, 영화, 가요 등 연예가 핫이슈 및 키워드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1월 드라마 리뷰에 이어 2월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스타 인터뷰를 테마로 정했다. 이번 주에는 10년 만에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개그맨 이봉원을 만났다. 다음 주에는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명랑히어로’ ‘환상의 짝꿍’에 등장해 시청자의 반가움을 사고 있는 개그맨 양원경을 만난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개그 무대를 석권하며 10여 년 동안 최정상에 올랐던 개그맨 이봉원. 1980~90년대 TV를 즐겨본 시청자들이라면 한번쯤 그의 개그에 웃었을 것이다. 이봉원은 KBS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 등 수많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장두석과 함께 코미디에 음악을 접목했던 코너 '시커먼스’는 큰 사랑을 받았고, 후배 개그맨 이수근 정명훈 장도연에 의해 ‘키 컸으면’으로 오마주되기도 했다.

해거름 무렵인 오후 5시. ‘이봉원 박미선의 우리집 라디오’ 녹화를 위해 서울 SBS 목동 사옥을 찾은 이봉원을 만났다. 서울 우이동에 위치한 북한산 등반을 마치고 막 도착했다는 이봉원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에이~ 신인도 아닌데…”. 인터뷰 시작 전 포토타임에서 양쪽 볼에 손을 갖다 대는 귀여운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하자 정중히 거절했다. 기분 좋게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재치, ‘연이은 사업 실패’라는 힘겨운 산을 넘은 사람답지 않은 아니 어쩌면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이기에 더욱 가능한 여유로움이 흘러나왔다.

이봉원은 지난달 5일 최양락과 함께 SBS ‘야심만만2-예능 선수촌’에 출연해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다음날 두 사람의 출연 분량이 담긴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모으며 파장을 일으켰다. 언론에서도 ‘개그 거장 최양락과 이봉원의 녹슬지 않은 입담’이라며 활약을 호평했다.

“특별한 개그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의외의 반응을 얻어서 부담스러웠죠. 다들 ‘너 어디 갔다 왔니?’라고 물으시는데 전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동안 사람들이 봐주지 않다가 다시 봐주기 시작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프로덕션 사업 공부를 위해 오른 일본 유학길

개그맨으로 활약하던 1999년. 이봉원은 무작정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로덕션 사업 준비를 위해 일본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 대학 시절 일본어학과를 전공한 탓에 언어 구사의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그래도 기초부터 다지기 위해 일본 전문대학교에 입학, 유학생들과 똑같이 공부를 시작했다. 2001년까지 2년6개월 정도 일본에 머물면서 프로덕션 일을 배웠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개그맨으로 활동했던 이력을 인정받아 2001년 일본 지상파 방송인 NHK에서 ‘한국어 강좌’를 1년 정도 진행했으며 후지TV 오락프로그램 ‘에브리데이 나이트’도 6개월 정도 출연했다.

비록 진행 위주의 방송이었으나 일본 방송 관계자들은 그의 재치 입담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유명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전속 계약 제안을 받았으나 정중히 사양했다. 당초 계획했던 프로덕션 사업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 개그맨으로 계약을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당시 국내 연예인들이 일본에서 활동하기 전이라 한류의 개념이 없었죠. 계약을 했다면 원조 한류 개그맨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후배 조혜련의 일본 활동에 대해서는 “가수는 가사를 외우면 되고 연기자는 대사를 하면 되지만 개그맨은 현지인 수준의 언어 구사력으로 웃겨야 하기 때문에 정말 힘들다”며 “언어로 웃긴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데도 묵묵히 잘 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이은 사업 실패…개그의 원천

2001년 입국해 사업가로 전향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이 방송 후배를 양성해내는 매니지먼트. 당시 김구라 및 신인 개그맨들이 그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매니지먼트 사업이 실패로 돌아섰고 이후 벌인 커피숍, 단란주점, 연기 학원까지 줄줄이 쓴잔을 마셔야 했다.

“이름 하나 믿고 사업을 시작했죠. 의지와 추진력이 있으니 반드시 성공할거라 생각했어요. 비록 사업은 실패했지만 인생의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없어요.”

이어 “4년 정도 갚았지만 아직 7억 가량 빚이 남아 있다”라고 털어놓으며 웃었다. 하지만 이렇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했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


“매일 빚을 갚아도 하루만 자고 일어나면 빚이 눈덩이처럼 커져 있더라고요. 사람이 돌파구가 없으면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데 제가 딱 그런 경우였죠. 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서 방송을 이용하는 건 싫었어요. 돈을 위해서 억지웃음을 팔고 싶지 않았거든요..”

아내 박미선 VS 동료 박미선

연이은 사업 실패로 힘들어할 때 아내 박미선의 도움이 컸다.

“가장 힘들 때 옆에서 지켜봐 준 아내에게 고마웠죠. 그런데 제가 애정 표현에 서툴러서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아직 한 번도 못 해 봤네요. 심지어 부모나 아들에게도 사랑 표현을 못했네요. 최양락 씨가 절 보고 ‘최후의 조선시대 아버지’라고 하더라고요.”

이봉원이 사업에 연이어 실패하자 많은 사람들이 오해했다. “아내 박미선의 돈을 끌어다 썼다” “생활고에 시달린다” 등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최근 들어 아내 박미선이 남편의 사업 실패를 개그 소재로 사용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봉원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업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고 본인이 떳떳하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다는 것.

“빚에 시달릴 때에도 아내에게 투자를 하라고 권유하지 않았죠. 아내에게 돈을 달라고 말한 적도 없고요. 아내는 사업하는 것을 극구 말렸지만 제가 멋대로 행동했죠. 지금은 아내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요.”

현재 이봉원과 박미선은 SBS ‘이봉원 박미선의 우리집 라디오’와 이무송 노사연 부부와 함께 케이블 채널 KBS N ‘하하호호 부부유친’을 진행 중이다.

“아내와 함께 방송하는 것을 꺼렸는데 결혼한 지 16년째라 우리가 사는 얘기를 들려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으니 방송하기 편해요. 아내는 맛깔나게 진행을 잘해서 마음껏 떠들어도 늘 안심이 되더라고요.”

“요즘 개그는 좀…정통 코미디 부활시킬 겁니다”

이봉원은 후배들의 개그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한다. 촬영장 풍경도 크게 달라져 생소했단다. 과거에는 선·후배가 어울려 다니며 아이디어 회의부터 연습에 연습을 거쳤는데 요즘에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단다.

“요즘 개그는 유행을 읽어내는 순발력이 대세인 것 같아요. 과거에는 개그를 연마하기 위해 서적을 찾거나 연구를 해야 했는데 요즘은 키보드만 두드리면 무궁무진한 정보가 나오는 얼마나 편해요.”

KBS 2TV ‘개그콘서트’ SBS ‘웃찾사’ MBC ‘개그야’ 등 스탠딩 공개 코미디가 유행하고 있지만 이봉원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요즘 개그는 정석을 찾아볼 수 없는 오버스러운 연기가 많아요. 말장난 위주의 개그가 전부인 줄 아는 후배 개그맨들을 보면 안타깝죠. KBS ‘유머 1번지’나 MBC ‘청춘 만만세’처럼 옛날 꽁트를 부활시키려고요. 옴니버스 형식으로 꾸민 상황 코미디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이봉원은 노력을 게을리 하는 후배 개그맨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요즘 코미디는 코미디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즉흥적이죠. 말장난 위주의 개그를 하는 후배들은 자신을 ‘개그맨’이라고 부르기가 쑥스러울 것 같습니다.”

이봉원, 쉰 살에 이루고 싶은 꿈

이봉원이 그동안 개그맨으로만 활약한 것은 아니다. 1998년 ‘망치를 든 짱구와 땡칠이’에 출연한 이후 2005년 개봉한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 ‘겨울아이’ 등에서 영화배우로 특별 출연했다. “우선 공개 코미디를 통해 개그맨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그걸 이루게 되면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네요. 정통 드라마나 단편 영화에 출연해 보고 싶습니다.”

이봉원은 50세가 넘으면 토크쇼 진행자로서도 활약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초대 손님을 리드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연륜이 50대라고 판단했기 때문.

“미국 토크쇼의 최고봉인 자니 카슨이나 오프라 윈프리처럼 나이가 많음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와 상대방을 간파할 줄 아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죠. 제가 맡은 토크쇼 프로그램이 시청률 부진에 시달리더라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어느 곳에서도 풀어놓지 못한 속얘기를요. 이거 완전히 50대 ‘무릎팍 도사’네요.”

이봉원은 자신에 대해 ‘물’이라고 표현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인기도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흘러서 내려간 물을 보면서 ‘왜 다시 안 올라올까’ 고민하지 않아요. 고여 있는 물을 어떻게 정화시킬 수 있는지 고심하려고 합니다.”

이봉원은 개그야말로 가장 정직한 분야라고 말했다. 성실히 노력한 만큼 ‘웃음’이라는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의 진행 속도에 대해 “조급해하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신선한 웃음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라디오 스튜디오로 발을 돌렸다. 뒤에서 바라본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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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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