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200억 신화’ 개그맨 이승환 “3년의 실패 뒤 이룬 성공”

[쿠키人터뷰] ‘200억 신화’ 개그맨 이승환 “3년의 실패 뒤 이룬 성공”

기사승인 2009-08-06 19:09:00

"[쿠키 연예] 쿠키 연예팀에서는 매주 가요, 영화, 드라마 등 연예가 핫이슈 및 키워드를 분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8월에는 ‘창업에 성공한 연예인’을 만나 사업 노하우와 성공 과정을 공개한다. 첫 번째 시간에는 ‘갈갈이 삼형제’ 출신 개그맨 이승환(33)을 만나 고기 집 ‘벌집 삼겹살’로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들었다.

개그맨 이승환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KBS2 TV ‘개그콘서트’ 간판 코너 ‘갈갈이 삼형제’에서 활약했다. ‘갈갈이 삼형제’는 박준형의 유행어 ‘무를 주세요’로 화제를 모은 코너다. 이승환은 ‘갈갈이 삼형제’에서 노란 옷을 입고, 박준형에게 무를 건네주던 그 사내다. 당시 ‘갈갈이 삼형제’는 각종 영화, CF, 행사 등에서 섭외 1순위로 꼽힐 만큼 절정의 인기를 과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업가 변신을 선언하면서 팀을 나왔다.

“무명 시절에는 연수입이 700만원 정도였는데 ‘갈갈이 삼형제’를 한 이후에는 월 1억 원을 벌었어요. 잘 나가던 시절, 영광을 버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개그맨 수명이 길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제 끼와 관심을 발산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업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죠.”

3년 동안 번번이 사업 실패

그렇게 해서 처음 시작한 사업이 유아 교육용 셋톱박스(비디오 서버로부터 전송된 신호를 영상 및 음성으로 복원해 주는 장치)였다. 사업가들로부터 어린이 교육용 기계로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인지도가 떨어지는 브랜드라 시장 진출이 어려웠다. 결국 첫 번째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정보기술, 교재 출판사, 문화 이벤트 사업, 제조업, 극장식 바 등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댔으나 번번이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러던 중 2005년 외식 사업에 눈을 뜨게 됐고, 연이은 사업 실패로 이미 빈손이었지만 평소 친분이 있던 프랜차이즈 대표이사들과 의기투합해 고기집 브랜드 ‘벌집 삼겹살’을 시작했다.

당시 ‘벌집 삼겹살’은 동종 업계에서 처음으로 고기에 칼집을 내는 독특한 시도로 창업하자마자 눈길을 끌었다. 현재 연매출 200억을 올리는 사업가로 성공했다. 대표이사 이승환이 밝히는 ‘벌집 삼겹살’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입소문으로 성공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입소문이 가장 주효했던 것 같아요. 우리 고기를 먹고 간 손님들이 사진을 찍어 블로그나 카페에 글을 올리면서 퍼져나갔죠. 네덜란드에 있는 우리 농장에서 생산한 싱싱한 고기에 칼집을 내고 와인으로 숙성시킨 방법도 맛을 높였습니다. 또 회사에서 개발한 새콤한 소스가 야채와 잘 어우러져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삼겹살이 됐죠.”

삼겹살은 국내 시장에서 포화상태 아이템으로 꼽힐 정도로 흔한 음식이다. 아무리 한국인이 즐겨 찾는 음식이지만, 두 집 건너 한 집이 삼겹살 음식점이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보니 치열한 경쟁은 필수다. 과부하에 걸린 삼겹살을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외식 업계에서 삼겹살 사업은 ‘화약고에 화약을 들고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성공하기 쉽지 않아요. 그런데 우린 삼겹살에서 희망을 찾았죠. 국민의 식성이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고, 우리나라만큼 특정 부위를 즐겨 먹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죠.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삼겹살을 좋아할 겁니다. 그래서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풍부한 맛으로 승부하자고 한 게 맞아떨어졌어요.”

2008년 환율 상승으로 얻은 ‘사랑’

이승환은 한 마디 한 마디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하루 6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고객 서비스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단다. 그의 성실함과 추진력이 전국 매장 240군데를 둔 대형 프랜차이즈를 만들었다. 올해 일본 및 중국 진출도 앞두고 있다.

그의 사업 신조는 ‘본사의 이익만 추구하지 말자’다. 전국의 매장 하나하나가 살아야 ‘벌집 삼겹살’이 성공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해 발생한 환율 상승 사건이다. 네덜란드에서 고기를 들여오는 ‘벌집 삼겹살’로서는 환율 상승이 가장 큰 위기였다고 한다.

“환율이 쉴 새 없이 오르다보니 소비자가와 납품가를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만약 환율 그대로 전국 매장에서 돈을 받았을 경우 매장들이 줄도산 할 게 뻔했죠. 그래서 모든 손실을 본사가 부담하기로 하고, 환율이 오르기 전과 동일한 가격으로 고기를 납품했습니다. 본사로서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지만 꿋꿋이 이겨냈습니다. 본사의 노고를 알아봐주신 전국 각지 매장의 사장님들이 명절 때마다 지역 특산물, 사랑의 엽서, 격려금 등으로 고마움을 표현해주시더라고요. 그런 정성과 마음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고객의 사랑, ‘사랑의 삼겹살’로 반납.

이승환은 2006년부터 ‘사랑의 삼겹살’이라는 서비스 행사로 고객에게서 받은 사랑을 환원하고 있다. 복지관,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초대해 삼겹살을 제공한다. 뜻을 같이 하는 동료 개그맨들도 참여, 고객과 연예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삼겹살 파티가 됐다.

“고객이 주신 사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돈벌이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고 싶었어요. 매년 이 행사에 동참하는 점주들이 늘어나고 있어 뿌듯합니다. 이달 말부터 내달 초까지 ‘사랑의 삼겹살’ 전국 투어를 할 생각인데 올해 목표가 1만 명의 식사를 대접하는 겁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현재 외식 업체 대표이사로서 승승장구 중이지만, 이승환은 한때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로 절망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 같아 한강 다리 위로 올라갔습니다. 자살할 마음에 뛰어내리려 했는데 도움을 주셨던 분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뛰어내릴 수가 없더라고요.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살아볼 용기를 냈습니다.”

“불평 한 번 하지 않은 아내, 고마워”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던 순간, 그의 곁을 지켜준 사람은 후일 아내가 된 윤미라(30) 씨다. 사업에 실패할 때마다 ‘용기를 내라’며 힘을 주던 고마운 사람이다.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우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아내는 제 일을 인정해주고 묵묵히 기다려줬어요. 생활비를 갖다 주지 못할 때에도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죠. 또 자식에게 모든 걸 희생하는 착한 엄마입니다.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하는데요. 인터뷰를 계기로 가족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후배 개그맨을 응원하는 선배 되고파

이승환은 현재 한국경제 의료프로그램, 티브로드 휴먼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하는 등 방송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혹시 다시 개그 무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개그 무대를 떠난 뒤 1년 동안 ‘개그콘서트’를 안 봤어요. TV를 보면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질까 봐서요. 그런데 지금은 후배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제가 있어야 할 자리는 후배들을 응원하면서 지켜봐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개그 무대에서 보고 싶다’는 말보다 ‘벌집 삼겹살 맛있다’는 말이 더 듣기 좋습니다(웃음).”

사업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이승환은 10월 쯤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엮은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사업하면서 압류를 두 번 당했고, 한강 다리가 얼마나 높은지도 확인해봤습니다. 제가 스물두 살 때부터 경험한 창업 노하우를 많은 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훗날 나뭇가지가 잘리고 그루터기만 남게 되면 그것마저도 사람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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