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 웃고 배우로 지다”…서른셋, 세상과 작별한 故 박용하

“배우로 웃고 배우로 지다”…서른셋, 세상과 작별한 故 박용하

기사승인 2010-07-02 14:10:00

[쿠키 연예]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1994년 MBC 테마극장으로 데뷔한 후 16년 동안 배우 겸 가수로 성실히 살아온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일본에서는 한국가수 최초로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거머쥐며 ‘욘하짱’으로 이름을 알려온 박용하. 걸어온 날보다 걸어갈 날이 더 많았던 그가 서른셋에 스스로 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입고 벗으며 ‘배우’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가 이제 한 줌의 재로 팬들 곁에 남았다.

‘사람들은 가끔씩 나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해 너무도 쉽게 이야기를 한다’고 적힌 문구를 트위터 바탕 화면에서 올리고, 이따금씩 ‘잠이 안 온다’며 자신을 둘러싼 고민과 상황에 대해 간접적으로 마음을 드러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주연으로 캐스팅 될 만큼 정상을 달리는 배우였으며 ‘한류스타 욘하짱’으로 일본 무대를 누볐고, 일상생활에서는 마음씨 좋은 형이자 동생으로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던 지인들도 그가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외롭고 두려웠다. 지난 2008년 1인 기획사인 ‘요나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경영자로서, KBS ‘러빙유’ SBS ‘온에어’가 인기를 얻었지만 한류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 준 KBS ‘겨울연가’에 비견할 만한 히트 작품이 없었던 고민 많은 배우로서, 1970년대부터 송창식, 양희은, 정수라 등과 호흡을 맞췄던 매니저이자 공연기획자였던 부친이 위암으로 점점 쇠약해져가는 걸 바라본 효자로서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추락하는 것 같은 인기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의 삶을 옥죄어왔고, 결국 지난달 30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내가 대신 아파야 하는데 미안해. 미안해”라는 탄식 섞인 말을 부친에게 쏟아내며 세상과 이별했다.

6월 마지막 날, 비보를 접한 유족 및 지인 그리고 국내·외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소지섭, 김현주, 박효신 등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들은 2박3일 동안 빈소가 마련된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심병원에서 식음을 전폐하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그리고 2일 오전 6시 영결식을 통해 고인을 편안한 곳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팬들은 영정사진 속 고인의 환한 미소를 원망하듯 울부짖으며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를 연발했다.

고인은 생전 연기 혼을 불태웠던 서울 목동 SBS, 여의도 KBS와 MBC를 거쳐 태어나고 자란 합정동과 논현동 자택을 지나 오전 9시35분쯤 경기도 성남 영생원에 도착했다. 2시간 20분이 지난 뒤 한 줌의 재로 변한 박용하. 생전 건장했던 고인이 화염의 온기를 담은 재로 변하자, 유족과 지인들은 참았던 울음을 다시 한 번 쏟아냈다. 이후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안치돼 영원한 쉼을 얻었다.

지난해 3월 KBS 드라마 ‘남자이야기’ 제작발표회에서 “연기자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일 욕심을 더 내고 싶다”며 16년간의 활동이 만족스럽지 못한 듯 연기 갈증을 느꼈던 박용하. 이제 우리는 작품으로만 그를 다시 만난다.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비운의 라디오 PD ‘상혁’(KBS ‘겨울연가’)부터 대기업 후계자로 두 여자의 사랑을 받는 ‘이혁’(KBS ‘러빙유’), 서울대 법대 출신에 고집 강한 PD ‘경민’(SBS ‘온에어’), 독학으로 실력을 갖춘 개인투자자 ‘현수’(영화 ‘작전’)로. 다양한 캐릭터에 녹아들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그를 팬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2003년 발매된 첫 번째 정규 앨범 ‘기별’(期別). 당시 그가 팬들을 바라보면서 불렀던 노래 ‘시간을 다시 돌려도’. 팬들은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며 서른셋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고인을 꿈에서나마 만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듯하다. ‘왜 사랑했나요. 떠날 거면서 이렇게 그리움만 남길 거면서. 이것밖에 안 될 그댈 숨긴 채 왜 날 사랑하게 했나요. 그대가 밉지만 후횐 안 해요. 시간을 다시 돌려도. 사랑을 몰랐던 내가 훨씬 불행했을 테니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